- 법실무계와 법학계의 산학연계 실험 3 -

흔히 변호사를 공부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것도 돈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니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직업인 셈이다. 판사나 검사와 달리 선비 사(士) 자를 쓰는 것도 그런 이치일 것이다.

변호사가 하는 공부는 가깝게는 의뢰인을 위한 것이지만 멀리는 법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변호사의 연구 결과가 치열한 법적/법정 공방을 거쳐 당해 사건의 판결로 남고 나아가 판례로 형성되면 이는 법학 논의의 소중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역으로 학계의 논의는 변호사들의 서면 공방과 구술 변론을 통해 법정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재판 등 법적 분쟁이란 실무 영역을 두고 있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실무와 유리돼 있다면 공리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의 학술활동은 법학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법학을 실용 학문 정도로 치부하거나 나아가 학문 정체성까지 의심하는 경우도 있는데, 법률가에 대한 조롱이 법학이란 학문에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공부와 전문화로 실력을 배양하기보다는 수임경쟁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변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시험을 통한 법률가 선발”이란 사법시험 시대의 막을 내리고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란 법학전문대학원 체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대학이 실무 교육에 치중하다보니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 소홀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오늘날 우리 법학계의 현실은 다소 실망스러운 상황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합쳐 놓는 것을 이상으로 출범했지만, 법전원은 현장과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공을 나누고 넘나들지 못하게 하는 구태가 여전하다. 인간과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법학이란 학문의 특성상 종합적 접근, 학제적 연구 등 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치열한 현장과 실무계의 요구를 외면한 채 여전히 개별 전공과 고답적 이론에 갇혀 있다면 법학이란 학문은 갈라파고스의 생물들처럼 고립을 자초하여 학문의 정체성은 물론 경쟁력마저 잃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과대학/법전원이 법학이란 학문연구기관으로서 중추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법학이 반드시 대학과 강단에 있는 교수와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변호사가 학문적 관심을 갖고 법학을 연구한다면 그런 변호사는 법학자임이 틀림없다. 학문적 열정이 충일한 변호사들이 실무 경험에 이론을 더하고 각자의 관심사(철학, 경제학, 예술 등)를 법학적 논의에 가져오는 종합적/학제적 연구를 한다면, 정체돼 있는 법학계를 깨우는 충격파가 될 수 있다. 이점에서 법학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대한변호사협회의 학술대회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설립된 지 650년이 넘는 비엔나 대학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건물은 모퉁이마다 높은 타워로 되어 있다. 각기 철학, 신학, 의학, 그리고 법학을 상징한다. 이 대학보다 더 오래된,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긴 볼로냐 대학은 중정 뜰에서 2층으로 오르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법학부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학문(신학, 철학, 의학)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변호사들 스스로 비즈니스 뛴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변호사를 사고판다는 말에 이의 달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지만, 학문적 관심을 갖고 학술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이 법학자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찬희 협회장 취임 후 법학연구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을 모아 협회 내 학술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로부터 1년여 동안 준비하여 개최한 이번 제1회 학술대회는 매우 열띤 학술연찬의 장이었다. 이것이 지속된다면 변협 학술위원회는 법학계와 법실무계 가교 역할의 한 축을 감당할 것이며, 제1회 변호사 학술대회는 변협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글은 2020년 10월 15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제1회 변호사 학술대회에서 한 축사(“법실무계와 법학계의 바람직한 산학연계의 큰 걸음 - 제1회 대한변협 학술대회에 부쳐”)를 기고문 형태로 수정·보완한 것이다. 이전에도 산학연계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어 위와 같은 부제를 붙였다. “변호사연수제도의 새로운 모색 - 산학연계 실험 -”, 대한변협신문 2005년 3월 12일자; “판결문작성과 저작권법의 존중 - 산학연계 실험 2 -”, 대한변협신문 2005년 8월 22일자 참조.

 

/남형두 변협 학술위원회 위원장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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