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번에 변협에서 ‘명예변호사’로 위촉되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명예변호사는 '모범적 변호사상'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니 몹시 부담스러운데, 앞으로 그렇게 살라는 편달로 받겠습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저는 ‘법조윤리’를 매년 강의하는데, 첫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변호사윤리강령’을 낭독합니다. 주어를 분명히 넣어서 “나, OOO는, 기본적 인권의 수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서서 낭독하면, 가슴에 뭔가 찡하게 오지요.

명예변호사로 위촉해주신 대한변협에 감사드리며, 변호사윤리장전에 있는 변호사 사명을 수임변론이 아닌 방법으로 실현하는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면서, 법의 가치를 높이고 변호사의 정당한 위상을 높이는 데 나름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과거 군사정권시절 시위 전력 등으로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탈락하신 경험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8년에 27년 만에 합격증서를 받으셨습니다.

1981년 3차 면접시험에서 제가 받은 질문은 “데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같은 것이었습니다. 법조인이 되면 뭘 할건가 라는 질문에 대해 “무변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변론하고 싶습니다”고 답했더니, “그럼 판검사는 안하겠다는 거지?”라는 시비가 걸렸습니다.

당시 면접기준으로 새로 들어온 ‘국가관’ 불량으로 사전에 찍어놓고 탈락시켰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 말고도 10인이 같은 사유로 불합격했습니다.

27년 후 다시 합격한 것을 보면 저의 국가관이 문제가 아니라 그때의 처사가 불량했고, 민주화된 우리의 국가가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워가는 한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권고를 바탕으로 법무부가 사법시험 불합격처분을 취소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유로 불합격했는지를 증명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다행히 1981년 당시 불합격사유를 ‘보안사 첩보’ 문건으로 조사해놓은 분이 계셨습니다. 여러 면접위원들의 증언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진화위 조사를 토대로 법무부가 불합격처분을 직권취소함으로써 3차 재응시가 가능했습니다. 장관이 그런 결단을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시 정성진 장관님과 법무실 실무진에게 감사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의 불법을 공인한 점과 개인적 명예회복의 의미가 있다는 느낌과 함께, 어려운 시절에 저를 격려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하지요.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받으신 후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는 대신, 법학자로의 길을 택하셨는데요.

같이 합격한 다섯 분이 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가 된 것이 기쁘지만, 저로서는 책읽고 글쓰고 학생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게 천직이자 일상의 기쁨입니다. 학자로서 저는 젊었을 때 교과서는 안 쓴다, 남과 같은 제목의 글은 안 쓴다는 나름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자유롭게 다른 제목의 저술을 계속 쓸 수 있고, 긴 호흡의 내용으로 강의실 밖의 독자, 청중과 대화 나누는 게 기쁜 일이고, 이는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직접 소송을 하고 싶다는 아쉬움을 느끼신 적은 없으신지, 가장 보람찬 일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 드립니다.

교수로서는 누가 사건 의뢰를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향한 법적 논변을 개척할 소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연구실에 손때 묻은 누런 서류봉투를 든 분들이 종종 와서 하는 하소연을 들을 때 답답하지요. 실제로 변론되기 어려운 소외지대의 사건에 대한 개척적인 변론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종종 있지요.

직접 소송에 관여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임은정 검사가 징계당할 때 특별변호인을 맡은 적이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 진술인으로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인에게 도움을 주는 ‘변론법학’도 법학의 주요한 접근방법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의뢰인들은 변호사 수임료가 아깝다고 종종 불평할 텐데, 실제로 사건을 맡아 고뇌하는 변호사들 보면 그런 고민대행업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사의 법조계 인사와 그 역사를 모두 담아낸 책을 다수 집필하셨습니다. ‘역사 쓰기’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이유, 준비하고 있으신 책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의 청년시절에는 권위주의 체제하에 인권침해가 일상화되어 있던 시기이고, 법조인들이 그런 억압체제에 부역하는 문제에 대해 백서가 아닌 ‘흑서’를 춘추필법으로 폭로, 질타하고픈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가르치다보니 어두운 면을 질타하는 방법보다는 법률가의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온 사례들을 알려주는 게 더 좋은 방법 같았습니다.

흑암을 말하기보다 흑암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빛을 찾아나섰고, 그러한 법률가의 자취를 정밀하게 그려보자고 나서다보니 이게 긴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제하에서의 변호사의 법정투쟁을 조명한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와 독재시대에 인권변호사의 역할을 파고든 ‘인권변론 한 시대’를 썼습니다. 우리의 사법사, 변호사사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 ‘가인 김병로’를 1차 자료를 통해 규명했는데, 거의 10년 작업이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의 기원에 대해 ’100년의 헌법’으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한국사에서 법률가의 의미 있는 역할에 대해 일종의 시리즈가 된 셈입니다.

현재도 두어 개 주제를 책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저는 완성되기 전에는 일단 비밀로 합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각종 범죄 원인과 실태 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국민의 관점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쓰고 계신 정책, 제도는 어느 부분이신지요?

형사정책연구원은 범죄와 형벌을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정책방안을 수립하는 국책연구기관입니다. 31년 역사 속에서 1600편의 연구보고서를 냈는데, 조사와 정책, 법령분석이 결합되어 있는 연구기관으로서 독보적입니다. 제 전공이 형사법(형사정책)으로 되어 있으니, 정책연구의 방향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형사정책이라고 하면 흔히 대범죄투쟁을 떠올리는데, 저는 형사정책에서 인간존엄성을 으뜸가치로 하고, 증거기반의 조사연구를 통한 합리적 정책의 수립을 강조합니다. 사법이라는 골목 분쟁해결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입법이라는 고속도로를 제대로 깔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형사사법에 못지 않게 형사입법의 개선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현장, 문제의 현실을 깊이 파고들고, 각 당사자들의 목소리(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포함하여)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변론에서도 필요할 뿐 아니라, 학술연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정원에서는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장기적 비전으로 정부 정책을 선도해내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형법이 많아 각종 규제가 족쇄가 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형량 상향이나 형사처벌 신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인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형주의적 대응책은 실상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생색만 높이는 응급처방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적용도 쉽지 않고요. 형량상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안의 전후좌우를 살펴보고 비난 일변도가 아닌,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다른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고 싶은 것이지요. 형벌 영역에서는 특히 포퓰리즘 공격이 득세하기 쉬운데, 법률가는 오랜 기간 발전되어온 법의 기본원칙(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영장주의 등)을 수호할 임무가 공통으로 주어져 있다고 봅니다. 또한 특정한 형사정책이 얼마나 증거기반의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부작용은 없는지를 늘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법률가는 범죄자도 존중받아야 할 존엄성을 갖춘 인간이고, 인간은 악한 짓을 해도 곰곰이 살펴보면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고, 악마화하는 여론이 있다면 거기에는 다른 의도가 개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심도 해가며 반성적 성찰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한변협과 변호사 단체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요.

변호사윤리규약에는 “변호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며, 법령과 제도의 민주적 개선에 노력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우리의 제도와 관행은 검사 측에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같습니다. 변호사들은 불법한 관행은 물론이고, 부당한 관행에 대해서도 민주적 개선을 위해 공동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심야수사, 피의사실공표, 포토라인 등의 인권침해적 관행들이 개선되고 있고, 변호인 참여도 점점 실질화되고 있습니다. 이같이 불편하고 침해적인 제도와 관행을 하나하나 바로잡아가야 할 주체는 변호사단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머물러 있는 직업이 아니라, 늘 인권보호, 정의실현, 민주개선을 위해 미래 비전을 갖고 부지런히 나아가는 야인(野人)입니다. 한국의 변호사상을 세우는 데 으뜸되는 역할을 한 이병린 변호사(제13대, 제17대 대한변협 협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변호사의 직업이란 억울한 사람의 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입법의 맹점, 사법의 불비, 행정의 독선을 대중의 위치에서 보고 느끼게 된다. 항상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그 기질이 야인답게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고전적 명제도 가끔씩 떠올려보면 변협의 소임이 참으로 소중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좋아하는 경구 같은 것이 있다면요.

일반적인 언급보다 변호사의 자세와 관련된 것으로 저는 두 가지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나는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서 나오는 것인데, “단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제해낼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전 세계가 나를 손가락질해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라는 말과 법조윤리 강의에서 꼭 등장하는 브로엄 경의 말씀 “변호사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직 한 사람을 안다. 그 사람은 그의 의뢰인이다. 의뢰인을 구하는 것은 그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의무이다”라는 말입니다. 변호사의 존재근거는 바로 그의 의뢰인이고, 의뢰인과의 두터운 신뢰관계입니다.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란 나쁜 말이 있는데, 실은 “좋은 법률가는 필요한 이웃, 좋은 이웃”입니다. 그렇게 느껴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겠지요.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요 약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전) 양형위원회 위원
(전) 법학교육위원회 위원
‘가인 김병로’ ‘100년의 헌법’ ‘인권변론 한 시대’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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