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5개월이 지났다. 180석 거대여당의 출현과 초선의원 비율의 증가로 수많은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1일 현재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수된 건만 6051건이다. 매달 천 개 이상의 개정안들이 발의되는 셈인데, 이 추세대로라면 21대 국회는 역대 최대인 4만 건의 법안이 쏟아질 전망이다. 이 정도면 ‘입법 홍수’를 넘어 ‘입법 쓰나미’다.

더 많은 법률이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법을 통한 규제가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일부 제약해 사회 전체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것이 본질이라면, 잘못된 규제는 오히려 사회 전체의 자유총량과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법안은 양(量)보다 질(質)이 중요하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우리 국회는 법안의 질보다는 양에 골몰해온 모양새다. 최근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는 총 2만4141건을 발의해 의원 1인당 검토해야 할 법안 건수가 적게는 프랑스의 20배, 많게는 영국의 90배를 넘고, 인구가 7배인 미국보다도 2배가 많다. 이처럼 입법의 양적성과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전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일하는 국회’다. “멍청한데 열심히 일하는 상사가 제일 무섭다”는 세간의 말처럼, 국회도 열심히 일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국회의원 스스로가 입법권을 절제하여 행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민의의 통로인 입법권을 또 다른 법이나 제도로 제한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 논란을 낳을 수 있고, 의원 개인의 책임감 없이는 충분한 연구와 의견수렴을 거친 내실있는 법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졸속법안을 다수 발의한 의원보다 양질의 법안을 적게 발의한 의원을 높게 평가하는 풍토 조성이다. 예컨대 법안의 중요성과 품질을 정당의 공천 심사기준이나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기준으로 반영하면, 의원들이 법안 개수에 집착하지 않게 돼 부실법안이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일한 국회의원들을 국민들이 잘 지켜보고 다시 뽑아주는 것이다.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해법이다. 위 세 가지 해법으로 국회에서의 충분한 심사와 토론을 거쳐 법률을 만들게 된다면 국회는 ‘법안공장’이라는 오명을 벗고 입법부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은 21대 국회에서는 법안 발의 건 수 경쟁이 아닌 국민의 삶을 어루만지는 알찬 법안들이 발의되길 바란다. 또한 여야가 합심해 꼼꼼하게 심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안들을 통과시켜주기를 소망한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법안을 성안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오늘도 법안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보좌진들에게 ‘법안은 양보다 질’이라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채용현 변호사
국회의원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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