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예일 로스쿨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책읽기였다. 460페이지의 긴 서사 가운데 극적인 장면은 몇 없었지만 하나의 커다란 법률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고 마무리 되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는지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일 대학의 한국인 교수 헤럴드 고는 아이티 난민에게도 자신을 대변하고 보호해줄 변호인이 필요하다는 명제를 법적으로 인정받고자 3000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입했다. 그를 따르는 예일대 학생들과 뜻을 함께 해준 변호인만 100여 명이었고 이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그는 몇 년을 더 이 문제 매달려야 했다.

변호인이 법정 문을 박차고 들어가 누군가의 억울함을 드라마틱하게 증명하고, 그에 대한 획기적인 보상을 약속받는 시나리오를 기대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치열한 법정’이란 제목과 달리 실제 법정에서 이뤄지는 공방은 0.001%도 다뤄지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이국의 난민을 위한 문제에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쓰였다. 한 명의 교수, 한 명의 학생, 한 명의 변호인, 또 한 명의 판사, 한 명의 행정가, 한 명의 정치인, 그리고 국방부의 간부와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하나의 판결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는지를 곱씹어보게되는 책이다. 난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을 때 백악관은 48시간 이내 이에 호응해 관타나모 난민들을 석방했다. ‘정치판에서는 먼저 나서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과 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 임을 이야기한다. 이 판결은 영구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하고 또다시 난민들은 별다른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되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럼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망명 신청을 처리하는 데 정부가 훨씬 더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법원과 언론의 감시 아래 입국허가 비율은 3% 미만에서 85%까지 상승했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졸업 후 진로와 눈앞의 부당함을 바로잡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대로 고 교수에게서도 나타난다.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이 법무부를 상대로 벌린 일의 대가를 생각하며 담보대출이 연장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한 개인이었다. 재판부와 행정부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그 뒤엔 정치와 국제적인 역학 구도가 산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이 세상에 나오게 된 건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고 교수의 지극히 현실적인 공감 능력 덕분이었다.

 

 

 

/민지숙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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