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흥청망청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 혹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시대를 역행한 접대문화들이 입방아에 오른다. 하단에 소개한 황창배(素丁 黃昌培, 1947~2001)의 ‘룸싸롱’ 그림은 이러한 문화가 만연했던 1983년 시대풍자의 한 단면 속에서 그려진 것이다. 마치 19세기 부르주아의 성문화를 비판한 마네의 ‘올랭피아(1865년 프랑스 살롱전 입선)’처럼 그림 속 남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익숙한 포즈로 서로를 바라본다. 미술은 인간 내면을 향했을 땐 치유와 감상을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를 향했을 땐 현장을 고발하는 르포가 되어 시대의 내밀한 현상을 스스럼없이 고발한다. 그렇게 화가들은 시대가 내팽겨 쳐버린 양심과 도덕을 그림 안에 고발함으로써 우리 삶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명상케 한다.

황창배, 룸싸롱, 한지에 채색, 1983황창배미술관 홈페이지 (사진 저작권은 황창배미술관에 있습니다.)http://hwangchangbaemuseum.com/
황창배, 룸싸롱, 한지에 채색, 1983황창배미술관 홈페이지 (사진 저작권은 황창배미술관에 있습니다.)http://hwangchangbaemuseum.com/
황창배, 무제90-4, 1990
황창배, 무제90-4, 1990

자신만의 시선을 손에 빗대 표현한 황창배의 그림들, 혹자는 이를 들어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라 칭한다. ‘아용아법(我用我法)’ 말 그대로 자신만의 법을 만들고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아는 이들이라면 “과거를 넘어 새롭게 나아간다”는 서구의 아방가르드(前衛藝術, Avant-garde)라는 개념과 상통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길이 아닌 곳이 갔을 때 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의 어제를 밟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소정 황창배는 안타깝게 2001년 세상을 등졌다. 1990년대 ‘황창배 신드롬’을 일으켰음에도, 지난 20여년간 잊혔던 그가 최근 언론과 다양한 전시를 통해 요청되고 있다. 국전(國展)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듬해부터 ‘1979년 이후’라는 전각을 파고 화법 전환을 꾀한 작품들이 11월 7일 끝난 황창배미술관 ‘파격의 서막 - 1979년 이후 그림’ 전시에 대거 소개되었다.

황창배, 무제, 수묵담채, 1980
황창배, 무제, 수묵담채, 1980

이에 대해 철농 이기우(鐵農 李基雨, 1921~1993)의 따님이자 사모님인 이재온 관장은 “어떤 강박이나 메시지를 그리려는 의도가 없는 자유로움을 표현한 것”이라며 “1979년 이제부터 황창배 그림이다”를 선언한 이후, 전통에 기반 하면서도 즉흥적 감정을 담은 직관의 드로잉을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많은 현대 화가들이 전통을 달항아리 같은 소재주의로만 해석할 때, 붓을 유희하며 오늘을 관조한 해체적 풍자화를 담아낸 황창배 화백. 전통 문인(文人)이 사라진 시대, ‘新 문인의 행보’를 추구한 그가 떠오르는 이유는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자기혁신의 미학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안현정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 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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