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 지난 달 제주지검의 한 검사가 추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내부망에 올리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SNS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커밍아웃이 갖고 있는 본래 뜻과 어긋난다”며 “추 장관과 검찰, 언론 모두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지적했습니다.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e out of the closet)’라는 문구에서 유래한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는 성소수자가 밝은 세상으로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추 장관이 쓴 ‘개혁’ 표현도 오용 논란이 있습니다. 한 평검사가 실명으로 법무부 장관에게 반기를 들고 나온 걸 두고서, 해당 검사를 포함한 특정 세력에 대해 어떤 행동을 다짐하는 문구인데 여기에 ‘개혁’ 단어를 쓰는 것은 와닿지 않습니다.

이후 원조 친노로 불리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작심한 듯 ‘장관이 SNS에 그런 글을 올리는 건 경박한 짓’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유인태 전 총장의 지적을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박수현 전 의원은 “존경은 하지만, 시류에 뒤떨어진다”고 일축했습니다.

대선배를 향한 ‘시류에 뒤떨어진다’는 표현이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언어의 품격’이나 ‘겸양’이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사회. 그게 박수현 전 의원이 인식하고 있는 시류일까요. 어쩌면 그런지도 모릅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달 초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보수 단체들을 두고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입니다. 살인자”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집회를 주동한 건 위험한 일이지만 국민을 ‘살인자’로 낙인찍다니요. 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국회 법사위 예산심사 전체회의에서 대법관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들 한번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라고 말해 논란이 됐죠.

여권에서만 막말 논란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추미애 장관을 두고 “광인 전략을 구사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광인이라니, 쉽게 쓸 표현은 아닙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법무부 장관의 SNS 활동은 시류에 맞고 기민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뼈아픈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하나하나가 우리 정신세계의 근간이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품격이란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1분 1초를 다투면서 누가 더 비정한 말을 내뱉나 SNS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 세계는 어쩌면 이미 문화적 쇠락기에 접어든지도 모릅니다. 이 시류에 편승하고, 때로는 더 부추기기도 하는 사회 지도층에 대해 우리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합니다.

 

 

/이채현 TV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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