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의 단골 무대가 된다. 사건과 인물이 극명하고, 스토리 또한 매우 극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 이후 있을 법한 삶의 평가를 재판으로 표현하는 작품도 꽤 많다. 나라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가장 높은 신이 판사를 맡고, 검사가 죄를 추궁하고 변호사가 피고인인 망자를 지켜준다는 큰 줄기 콘셉트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도 사후 세계의 재판을 다룬 작품이다. 흡사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와 그 구성면에서 매우 닮아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베르베르만의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대중적이지만 독보적인 이야기와 시선이 담겨 있다.

병원 중환자실 수술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아나톨 피숑’은 수술 중 사망한다.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간호사로 알았던 사후 세계 변호인 ‘카를린’에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피숑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삶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어서 냉소적인 검사 ‘베르트랑’을 만나고, ‘가브리엘’ 재판장에게 심판을 받으면서 다양한 극적 심경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를 보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만한 반전이 기다린다.

죽음 이후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상상의 영역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험을 토대로 죽음 이후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나오는 재판정도 외형상 현실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재판의 내용에서는 현실의 가치체계와 확연히 다르다. 생전에 판사였던 피숑이 판단하는 재판의 기준과 사후 세계 재판관인 가브리엘이 보는 기준은 확연히 달랐다. 실제로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천국의 가치관은 지상의 그것과 같지 않아요’ ‘우리는 지상의 도덕을 초월합니다’라는 말로 응수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작가는 관행으로 묶여있는 도덕적 엄숙주의를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삶의 가치를 충분히 누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보인다. 비록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충실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꿈과 자유의지에 충실했는가를 사후 재판정은 물었다. 과연 현실의 법조인들 판단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희곡 형식이다. 그래서 읽기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의 깊이가 모자라지 않는다. 쉽게 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연극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어서 한국 무대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긴장감과 책임감으로 가득한 현실 법정을 잠시 잊고, 상상과 위트가 넘치는 상상의 하늘나라 법정을 그려보는 휴식과 힐링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신과 함께』 (주호민, 웹툰)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서커스출판상회)

 

 

/장훈 전 서울특별시 소통전략실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