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 갑질.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퍼진 단어다. 상대적으로 강자의 지위를 가진 ‘갑’이 보다 약자의 지위에 있는 ‘을’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들을 지칭하는 ‘갑질’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지금 사회는 ‘불공정성’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원청이 하도급 공사대금을 나중에 정산해주기로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본사가 경영에 간섭하고, 부당한 요구를 합니다.” 공정거래 전문변호사로 상담하면서 사업자 간 거래에서의 ‘갑질’로 입은 피해를 구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흔히 공정거래 사건이라고 하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기업결합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위와 같은 사건들은 극히 드물게 발생한다. 상당수의 공정거래 사건들은 공정거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는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등과 관련하여 발생하고 있다. 특히 위와 같은 사건들은 갑을관계로부터 비롯된 사회구조적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는 대부분 ‘갑’을 위한 분쟁방지와 대응전략 구상으로 제공되고 있고, ‘을’을 위한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불공정거래 분쟁이 ‘을’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대응을 하지 못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불공정거래 행위와 관련된 사건에서 의뢰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는 신속한 손해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일반 민·형사적 조치에 앞서 사회에 마련된 다양한 구제방안을 활용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신고, 분쟁조정신청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는 최장 90일 이내로 분쟁을 조정하기 때문에 신속한 사건 해결과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공정위에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등 공정거래 분야의 소관 법령들을 위반한 사업자를 신고하여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 과징금 등 시정조치 등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다만, 간혹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해 합의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처벌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공정위 신고를 통해서는 직접적인 손해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18년도까지는 분쟁조정절차에서 합의가 결렬되면 별도의 절차 없이 자동으로 공정위 신고절차로 이관되어 피신청인들이 조정에 응할 유인이 높았으나, 분쟁조정신청 사건들이 증가하면서 공정위 신고절차로 자동 이관되는 것이 폐지됐다. 이로 인해 피신청인이 분쟁조정과정에서 조정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고, 신청인도 분쟁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용이나 시간적 부담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공정위에 신고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자 간 불공정거래분쟁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협의를 통한 해결이 쉽지 않다. 사전에 자문 등을 통해 개별 상황을 꼼꼼히 점검해 공정거래 사건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진수 공정거래 전문변호사

법률사무소 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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