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하면서 변호사를 시작하였으니 만 20년이 되었다. 전관 변호사들 위주도 아니면서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오니, 무언가 특별한 경영비법이 있냐고 묻기도 한다. 비법이 있을 리가 없고 시대를 잘 만났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이제 서초동 시대의 저무는 황혼을 보고 있다. 대형로펌들의 틈새시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이 현실이다.

서초동 로펌들은 주로 중소기업 중산층을 대리하고 서민들의 형사사건을 변호하여 왔다. 부산의 아파트입주민들을 대리하여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하면서 해운대 벡스코 대회의실에서 1000명에 가까운 의뢰인들을 상대로 2시간 넘게 소송 진행 및 전망에 대하여 질의응답을 하는 드라마틱한 경험도 있었다. 대기업 건설회사와 시행사 간에 이면 약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약정서를 구할 길이 없었다. 약정서를 공증한 공증사무소를 알아내서 문서 송부 촉탁을 하는 묘수를 찾아내어 승소의 길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원고 대리를 한다는 것의 험난함은 서초동 로펌들이 주로 겪고 있다. 대기업이나 기관들은 증거를 쥐고서 내놓지 않으며 석명, 문서제출 명령도 쉽게 무시한다. 형사소송만이 아니라 민사소송에서도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증거개시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 그렇게 되면 권리를 포기하던 중소기업 중산층들의 구제의 길이 넓어지고 변호사들도 적극적인 입증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백서 그리고 흑서가 있는 셈이다. 서초동 로펌 백서에는 서민 중산층을 대리한다는 자부심과 번영의 시기가 있었다면, 그 흑서에는 사건 수의 급격한 감소와 불안한 미래가 자리 잡고 있다. 서초동 로펌의 흑역사에는 형사사건의 감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서울구치소를 접견 가 본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어 간다. 구치소에는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국선변호사들밖에 없다고 들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무효라는 판결도 나오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그 판결의 취지는 형사사건은 재판부가 직권심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사사건은 국선과 사선이 차이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일본처럼 형사사건의 70%가 국선이 되도록 국선변호사제도를 현실화하여야 한다. 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의 예산을 공동투입하여 국선보수를 현실화한다면 청년변호사들의 개업 초기의 어려움도 극복되고 변호사업계와 국민이 상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서초동 로펌에서 아직 자유전문직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신을 가지고 생존하기 힘든 극단적 자본주의하에서 가끔은 “이런 소송은 안 합니다”라고 거절도 하고, 어려운 의뢰인들에게는 수임료 할인도 하면서 로펌을 운영해 간다.

 

 

/정대화 대표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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