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중국 고서 ‘열자’의 황제편에 나오는 우화다.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에 저공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키웠는데 먹이가 부족해지자 키우던 원숭이에게 아침에는 도토리를 3개,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성을 내었다고 한다. 그러자 아침에는 4개, 저녁에는 3개를 주겠다고 말했는데 원숭이들이 좋아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 고사성어를 접하면서 저공의 간교함을 비난하기도 하고, 원숭이의 우매함을 비꼬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이 고사성어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곤 한다.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식의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자칫 정치인들이 조삼모사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국민 스스로가 어리석으면 조삼모사에 넘어가기도 쉽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국내외 경제 위기극복을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무상 현금지원인데, 급기야 올해 정부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다는 60조 원에 달하는 슈퍼 추경을 통과시켰다. 일자리 창출, 경기 부양을 위해 당연히 돈이 필요하겠지만 추경을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진 데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책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최근 발표된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망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국가 채무비율은 올해 이후 10년마다 30%P 가까이 가파르게 상승하게 된다. 채무비율이 이처럼 오르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이례적인 사례로서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탈로는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전문가의 경고도 들린다.

IMF 극복 이후 탄탄하던 우리 재정이 불과 10년 후에는 채무비율이 GDP의 75.5%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2050년 우리나라 채무비율은 OECD 평균 채무비율을 훌쩍 넘어선 13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높은 채무비율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적립금 소진과 더불어 만성 재정 불안을 야기하여, 국가재정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지도 모른다.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공시지가 상승을 통한 보유세 증세 등 각종 세금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그동안 국민에게 재난소득 등 현금 퍼주기 정책을 행한 것이 바로 조삼모사에 나오는 아침에 도토리 4개를 주겠다고 말한 것과 진배없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이유다. 재정 건전성 악화를 감당하면서까지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냐는 논란은 정부와 국회가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현금 살포가 향후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극복 방법’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재정을 그때그때 경제 상황과 정치 논리에 따라 재단하면, 일관된 방향의 체계적 정책 운영이란 아예 불가능하다. ‘재정 정책의 정치화 문제(politicization of fiscal policy)’는 남미 국가를 망조로 이끈 포퓰리즘을 대변하는 글귀이다. 하버드대 공공정책학 분야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적한 바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국가재정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절대 과반을 넘는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의 출현으로 기재부 등 재정 당국의 역량이 정치에 위축되면서, 재정 운용의 주도권이 정치 영역으로 이전되었다는 인상이 강한 지금 우리는 ‘조삼모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이 정치적 지지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재정준칙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에 앞서 국회와 정부 당국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지적 수준을 원숭이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되며, 국민 스스로도 조삼모사에 울고 웃는 원숭이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국가 정책에 대한 냉철한 이성적 비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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