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조서’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오래 전 처음 조서가 만들어졌을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형사사법의 최종 결정권자인 판사님(영감님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이 조용한 사무실에서 편안하게 사건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그의 대리인들(검사, 사법경찰관)이 당사자들을 불러 취조(取調)를 하여 조서를 작성하고 증거들과 한 묶음의 기록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보내니 이 어찌 편안하지 않으리오.

당사자들 역시 편하였다고 한다. 먼 이국에서는 조서 같이 복잡한 서류 작성 없이 일단 체포되면 대부분 판사 앞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밤새 유치장(cell)에 가두는 바람에 직장에 알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충 경찰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면 주변에서 알 수도 없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남들 보는 재판정에 나갈 필요가 없으니 이 또한 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나 검사는 조사할 때 판사 대신 재판을 하는 기분이 들었고, 판사 역시 남들 시선이 모이는 법정에서 일일이 따질 필요없이 잘 정리된 조서를 읽으면 당사자가 부인을 하든 자백을 하든 사건을 이해하기 좋아서 잘 작성된 조서를 보면 수사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조서에는 아주 놀라운 힘이 있었는데 조서에 담기기만 하면 그 내용이 어떠한 내용이든 -전문진술이든, 전문가진술이든, 정확한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문건이든, 소문에 불과한 내용이든-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기만 하면 그 내용이 통째로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엄청난 힘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래서 검사나 경찰이나 조서에 모든 증거를 담으려고 하였고, 그 덕분에 조서 작성하는데 며칠이 걸리고 그 조서를 읽는 데도 며칠이 걸리는 일까지 생겼다고 한다.

검사나 수사관을 교육할 때도 ‘조서’는 녹취록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기관 입장에서 질문만 읽어보더라도 판사님이 유죄 심증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라고 교육하였고,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의 전체 구조를 ‘와꾸’라고 불렀으며, 조사를 받고 온 사람들은 제대로 답은 한 것 같은데 왠지 자신을 일정한 틀에 몰아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헌법상 진술거부권이 엄연히 있어 어차피 진술거부를 할 예정이면 출석거부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정이면 몰라도- 출석을 사실상 강요 받아야 했고, 진술을 거부하는데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계속 질문을 해 대고 ‘와꾸’로 짜 있는 조서를 내밀며 “보세요. 진술거부한 것으로 했습니다. 질문은 저희가 하는 것이니 고치지 마세요. 잘 되어 있지요?”라는 말에 특별히 반박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동의하지도 않는 그 와꾸에 마치 동의하는 것처럼 서명 날인을 해야 했고, 왠지 ‘조서’로 둔갑한 검사 작성의 의견서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22년엔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도 피의자가 공판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서’를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지켜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영화 시리즈 내내 절대반지를 파괴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냈지만 마지막 순간에 모르도르의 용암 앞에서 절대반지의 유혹에 못 이겨 반지를 끼고야 마는 프로도처럼…. 그래도 과감히 절대반지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 영감님도 없어졌고, 이제 수사가 재판을 대신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책상 위에 갇혀 윽박지르는 수사를 최적증거(best evidence)를 찾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하고 더 이상 절대반지를 서로 갖겠다고 싸우지 않기 위하여는….

 

 

/최성진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유)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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