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당거래’에서는 주양 검사(배우 류승범)가 한 언론사 기자를 술집에서 접대하며 기사 청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검사가 기자에게 “잘 부탁한다”며 명품시계도 건넨다. 영화를 볼 때마다 “현실도 저렇다면 얼마나 편할까”하는 상상에 잠긴다. 주 검사는 술자리에서 미주알고주알 기사 거리를 불러준다. 고릿적 일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요즘 법조기자들에게 주 검사는 외계인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일 것이다.

법조팀은 기자들에게 업무 부담이 높은 출입처 중 하나로 꼽힌다. 법률 지식이 어려워서도, 매일 타사의 단독 기사들이 쏟아져서도, 밥 먹듯이 야근을 해서도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과 언론의 유착을 지적하지만 검찰 출입이 힘든 이유는 역설적으로 다른 어떤 출입처보다도 유착이 어려워서다.

법조 기자 초년병들은 우선 “검사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것부터 익숙해진다. 어렵게 전화를 해도 질문에 대한 답은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게 대부분이다. 검찰 기자들이 쓰는 단독 기사들은 대부분 사건 관계인, 변호인 등에 대한 외부취재 결과물이다.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제일 먼저 피의자를 만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혐의를 기자에게 해명하는 피의자는 10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다. 많은 기자들이 다른 ‘귀인’들을 찾으려고 거리를 헤맨다. 검찰 기자를 오래 했던 한 선배 기자는 “사람들이 다 나를 피하는 것 같아 대인기피증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일부 검사와 기자의 유착이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로 인한 ‘오보’와 ‘왜곡 보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유착의 해결책으로 검찰을 더 폐쇄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통해 수사 검사들과 기자들의 접촉을 막았고 검찰과 기자 간 구두 브리핑인 이른바 ‘티타임’도 폐지했다.

티타임은 검사의 말을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 적는 공간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방향과 속도에 기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양측 간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많았다. 유착이라기보단 또 다른 견제의 장이었던 것이다. 티타임 폐지 후 진행된 주요 사건들이 ‘늑장 수사’ 지적을 받고 있는 게 과연 우연일까.

기자의 특권을 없애겠다는 취지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중요 공적 인물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어떻게 수사가 진행됐는지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는 문재인정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권고한 것이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과거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햇볕이 최고의 살충제’라고 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검찰의 빗장을 잠근다고 ‘부당거래’의 검사와 기자가 사라질까. 이제는 기형적인 검찰 공보 규정을 손질할 때가 됐다.

 

 

/나성원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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