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이야기다. 몇 년 전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듯 했다.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 없었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이다” “묻는 말에 대답하기 싫으면 진술을 거부해도 된다” 등 그를 안심시키려 하는 모든 노력이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만큼 수사기관에 소환되는 것 자체가 압박이던 모양이다. 그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직접 준비해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심적 족쇄를 풀었다.

얼마 전 몇몇 법원 출입기자와 이런 얘길했다. “나쁜 피고인의 예.” 자신이 본 피고인 가운데 누가 가장 재판받는 태도가 안 좋은지를 물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많은 지지(?)를 받았다. 재판 도중 자신의 일정을 이유로 재판 중단을 요청한 전적(前積)이 넉넉히 인정됐다. 지난 6월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출석한 첫 재판에서였다. 그는 재판 시작 30분 만에 갑자기 일어나 “기자회견이 있으니 남은 부분은 다음 기일에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라고 했다.

당시 한 법조계 관계자에게 이 일을 전했다. 이런 말이 돌아왔다. “웃기려고 한 게 아닐까요?” 그만큼 황당한 요청이었다는 얘기였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일반 국민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앞선 수사 단계에선 어땠는가. 최 대표는 검찰이 몇 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 소환 통보를 해도 불응했다고 한다. 참고인 신분 때에는 경찰이 우편 발송한 서면 조사용 조서를 백지로 되돌려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국회의원이 더러 있다.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그중 하나다. 4.15 총선에서 회계 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그는 검찰 출석 요구에 일절 불응했다. 불출석 사유로는 개인 사정 등을 들었다. 최교일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 현직 의원일 때 전직 검사장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국회 일정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대다수 국민이 어렵게 나가는 곳이다. 시간이 남아 수사기관에서 조사받고 법정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 생계를 위한 일을 잠시 미뤄두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일반 국민에게 법원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의 부름은 이렇게 무겁다. 법원·검찰 말이면 무조건 순순히 오라를 받으란 의미가 아니다. 다만 정도(程度)라는 게 있고 수준(水準)이란 것이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고 했다. 결과의 균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과정의 공평이다. 일반 국민이 하는 정도로 요청하고, 일반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불응했어야 평등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이 그렇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런데 그들은 뭔가. 대한민국 국민인가, 아니면 ‘국회의원’인가.

 

 

/조성필 아시아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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