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지금의 고통과 인내가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믿으며 살았다. 이러한 믿음은 나에게만 그러한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족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한 행동양식을 요구하거나 기대했고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내가 기대했던 미래의 행복은 쉽게 오지 않았고(실제로는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에 이해할 수도,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수소문하여 고등학교 친구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의논했다. 그 친구는 내게 이러한 사태의 원인도, 이것을 해결할 것도 ‘나’라고 하였다. 억울했지만 회사를 휴직하고 한 달 동안 가족들과 화도 내고 울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의 말처럼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자책감이 몰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늦지 않았고, 고맙게도 가족이 나에게 아직 기회를 줄 의지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문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가장 뼈저린 잘못은 내가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고 배워 알고 있으나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와 다르고,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과 달리 많이 바뀌었는데 나는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생각하고 고치려고 애써왔다. 가정교육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나는 말로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고 있었으나,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나의 기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역에 가까운 교과 공부를 하는 척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마음이 병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버팀목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했던 기억들이었다. 아무도 몰라주리라 생각했던 나의 노력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가족과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나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소소한 행복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지금껏 대화가 아닌 설교를 하면서 대화로 분식하고 있었다. 대화의 전제는 잘 듣는 것인데 나는 들을 준비도, 들을 의사도 없이 내 생각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화의 태도를 바꿔 잘 듣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나의 말에도 관심을 가져준다. 깨어있는 시간에 들어가면 나름 맞아주며 포옹도 해준다(그 중 하나는 2002년생이다). 그리고 각자의 언어로 나의 하루가 안녕했는지 묻는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바뀌었다.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행복한 일상이 모여 행복한 삶이 된다. 이것이 잘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웃고 있는지.

 

 

/이승현 변호사

서울회, 법무법인(유)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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