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현직 검사의 ‘캠퍼스 라이프’는 역사책처럼 흥미로웠다. 지금처럼 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는 법관이 많은 시절도 아니었고 하버드가 아닌 예일에서 공부한 사람은 더욱 귀한 때였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선진의 문물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법 현실과 비교해 냉정한 시각을 찾고자 했고,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가능한 많은 것들을 소화하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은 평범치 않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60% 이상이 법률가 출신이라고 한다. 한때 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법을 공부하려는지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법의 언어를 이해하는 건 엄청난 권력을 의미한다. 한 사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데 법학 지식은 모국어만큼이나 필수적인 역량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예일 로스쿨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이란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수많은 리더들이 거쳐 간 대학의 한 학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그런지 모르지만, 예일에서는 성적의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의 등수가 아닌 ‘높은 수준의 도덕적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문화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1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 함께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누군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밤새워 예습했다. 사법‘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된 봉욱 검사장이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예일대에서 만난 학생들의 모습 또한 충격 그 자체였다.

한 해 600명을 뽑는 하버드에 비해 예일은 150명만을 뽑아, 학생 1명당 6명의 교수가 지도한다. 엄청난 학비와 생활비로 졸업한 뒤엔 억대의 빚이 남지만 만약 그 학생이 공무원이 되거나 사회봉사를 위한 길로 나가면 학교는 그 빚을 탕감해준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의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고홍주 교수도 예일대에 있는데 그의 철학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예일처럼 우수한 학교의 재능 있는 학생들은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티 난민들만큼 가장 명석한 학생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 교수는 예일이 총잡이나 양성하는 다른 로스쿨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 ‘미국의 힘 예일 로스쿨(봉욱 저, 학고재)’ p.48.

마지막 장에 가서는 실제 예일이 어떤 곳인지는 상관이 없어졌다. 그저 이 책이 묘사한 집단이 어딘가에 존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미래만큼이나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성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수재들이 모여 있는 대학. 그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기르고, 판을 깔아주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하는 학문의 전당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만 남았다.

 

 

/민지숙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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