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모두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누군가는 어렵게 얻은 직업을 잃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부푼 꿈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을 중단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육아 문제로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거나, 줄어드는 은행 잔고에 밤잠을 설쳐가며 걱정하는 이 또한 있을 것이다.

코로나의 종식은 당면한 숙제다. 어떤 이유로든 모이지 않는 것이 교양이 되었고, 밥 한 끼 먹기 위해 명부에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적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용이 원칙이다. 모든 국민의 자발적인 동참이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다. K 시리즈가 하나 더 늘어 ‘K방역’이라는 영 입에 잘 붙지 않는 말도 생겨났다.

그런데 해외의 시각은 우리와는 다른 듯하다. 우리나라의 대처에 칭찬 일색일 줄 알았던 해외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 당황스러워진다. 코로나를 계기로 정부가 지나치게 개인을 통제하고 있는 나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예로 언급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정부의 권한 확대는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헝가리는 법률이 아닌 수상의 명령에 의하여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은 국가가 언론을 검열할 수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법원까지 문을 닫았다. 볼리비아에서는 코로나를 이유로 선거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코로나가 종식되는 대로 과도해진 정부의 권한이 원래대로 돌아갈까? 권력이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권력이 발전시켜 온 통치의 기술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푸코는 감옥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점점 강해지고 주도면밀해지는 권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감옥이다. 중앙의 감시탑은 어둡게 하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재소자들의 방은 밝게 만들었다. 재소자는 감독자가 실제로 자신을 감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구조라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시선의 비대칭이 발생하게 된다. 왜 새삼 푸코를 소환하는지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핸드폰 번호를 적고 QR 코드를 찍을 때마다 파놉티콘이 생각났다.

권력의 속성은 통제하고 규율하는 것이다. 권력은 결코 권한을 내려놓고 복잡한 길로 스스로 돌아가지 않는다. 데이터 처리기술, 컴퓨팅 파워, 인공지능까지 가세한 현대의 권력은 마이크로와 매크로 모두를 가지고 국민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크나큰 과제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견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는 않는지, 일몰 규정을 두고 있는지, 적절한 견제장치가 있는지, 절차적 정당성이 지켜지고 있는지. 모든 이슈가 정치 쟁점화되는 혼란한 정국에서 누군가는 호루라기를 불어 주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의 시선이 대칭되도록 해야 할 역할이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조원희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디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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