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 출입처를 옮긴 첫날. 방청석 첫 줄에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증인신문 상황을 노트북 메모장 프로그램에 받아치고 있는데, 뭔가 잘못돼 메모장 글이 ‘싹’ 날아가 버린 것이다.

기록할 기(記), 놈 자(子). 법원 출입 기자는 더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던데 첫날부터 난 실격이었다. 30대에 접어들며 한층 더 둔해진 손가락과 귀를 탓하며 터덜터덜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지만, 다른 게 신경 쓰인다. 소법정에서 타자를 치다 보면, 사건 관계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말은 안 해도 “시끄럽다”는 눈빛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타자 소리가 심리에 방해가 돼, 노트북 사용을 막는 재판부도 있다. 그러면 손으로 적어야 한다. 재판이 끝나고 메모장을 펼쳐보면 “이 글자 뭐지” 싶을 때도 있다. 물론 기자들끼리 비교를 하니까 오보가 나는 일은 드물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가치가 높은 재판, 정치인의 권력형 비리, 대형 경제범죄 같은 재판은 하급심도 인터넷 등으로 ‘중계’를 했으면 한다(기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언론의 프리즘으로 걸러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재판을 국민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1, 2심 선고 공판을 생중계할 수 있도록 내부 규칙을 개정했다. 이게 그동안 전 대통령 사건 선고 등에 한해서만 시행됐는데 넓혀나갔으면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이 왜 있을까. 법적 해결이 복잡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호주, 일본과 달리 일반 국민은 판결문도 구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주요 재판 중계로 국민의 ‘사법 거리감’을 줄였으면 한다. 재판이 이뤄지는 방식을 배우고 주요 사건과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헌법 취지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했다. 재판이 밀실에서 진행되면 공정했는지 알 수 없고, 나아가 국민이 사법부 판단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조항이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재판 심리와 판결의 공개’란, 국민이 법원에 직접 와서 재판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사실상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개라 시정이 필요하다.

여러 부작용이 거론될 수 있다.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난다” “피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 “여론이 영향을 줄 것이다” 등등. “기자님 가족이 형사피고인이면 그런 주장 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어떤 재판을 중계할지, 어떤 관계자 얼굴은 비공개할지 철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규칙 혹은 법령 정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어서 재판 중계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이채현 TV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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