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공정한 평등’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에 앞서 코로나 이전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던 보수와 진보, 좌우 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가치의 대립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치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보수는 먹고 사는 문제 즉 인간의 생존을 우선시하고, 진보는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인권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서 나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 본능이며 진보는 보수의 토대 아래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짧게 요약한다면 “보수는 기본이며 진보는 이상이다.”

인류 역사를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한 1945년까지는 보수적인 가치가 주류를 이루며 살아왔고 진보적 가치관이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0여 년이 안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것도 200~300년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나 이전의 석가모니는 인간에게 보수보다는 진보적 이념이 가치 있음을 설파하였지만 우리 인간들은 또다시 보수적 욕심을 채우는 데 그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피로 얼룩진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쟁, 현재 진행형인 이슬람과 기독교 간 분쟁의 역사를 보면서 과연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일생을 기록한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부의 축적을 권유하지 아니하고 부의 분배를 강조하였으며 좋은 옷, 좋은 음식보다는 의를 행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보수보다는 진보적 가치관을 설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나라 일부 교회가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공산주의를 표방한 일당 독재국가의 종교탄압 때문이라고 이해 되지만 예수님 말씀과 부합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소위 공산주의는 중세 근세를 이어 오면서 부의 극심한 불평등 때문에 생겨난 것인데 결국 인간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한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평등의 개념을 다시 짚어 보아야 하겠다.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 있는가?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생사를 거친 수백억의 인간이 똑같은 인생행로를 거친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결론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가 추구하는 평등이라는 것은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평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한 평등보다는 산술적 평등을 더 의식하여 정책이 수립되고 그 결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일이 많다고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교평준화 정책이다. 학생들에게 경쟁의식을 불어넣는 것은 교육이념에 반하고 반 인권적이라는 주장인데 그럴듯한 말로 불평등을 더 조장하고 있다.

결국 차별화가 불가피한 대학입학 시기가 되니 온갖 편법이 동원되고 불공정한 제도에 순치된 나머지 뭐가 잘못인지 모르고 남들도 이 정도는 다한다는 도덕불감증이 팽배하고 있음을 목도한 바 있다.

공정한 평등은 “각자에게 그의 것을”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거에는 중고교 입시를 통해서 각자의 능력이 다름을 어릴 때부터 체험해 왔다. 소위 나쁜 학교를 나오더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했다는 대통령도 소위 일류학교 출신만 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생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을 계속 거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한다.

인간의 사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중고 시절에 공정한 경쟁을 통한 공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교육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강충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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