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콜레라는 시대적 배경이었다.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전염병처럼 치명적인 사랑을 겪는 주인공들의 욕망과 인생을 그렸다. 무려 53년을 기다린 기적 같은 사랑 앞에 전율이 느껴진다.

‘코로나 시대’에서 코로나는 우리 변호사들에게 현실이다. 확진자 발생으로 법원 일시 폐쇄라는 문자가 오고, 소속 변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아 모 법무법인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재난영화에나 나올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어 당황해하는 변호사들이 주인공이다. 6월경 원주지원에서는 3번이나 고열 판정받았다가 겨우 입정할 수 있었다. 기업들의 매출이 90%, 50% 줄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대표로서 법인의 장래를(사실 월급날을) 걱정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헨리 키신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익숙하던 삶의 방식이 돌아 오지 못할 유물이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린다.

법률적으로도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된다. 감염병예방법, 집합금지명령, 동선파악, 문진표 작성 등과 관련한 법률자문을 요청받는다. 코로나로 인한 채무불이행을 불가항력으로 볼 수 있는지 질의를 받는다.

사회적으로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한다. 언택트, 소셜디스턴스, 팬데믹, 재난유토피아(생태계의 복원·공동체의식의 성숙·새로운 혁명의 도래) 같은 공식 용어 외에도 ‘확찐자’ ‘동학개미’ 같은 잡학사전용 단어들도 등장한다.

멘붕이다. 서초동 변호사로서의 현실과 초유의 역사적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매일 교차된다.

이 어지러운 코로나 시대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일상에 대한 사랑이 우선일 것 같다. 법무법인 구성원들과 모여서 식사하던 시절이 소중하다. 의뢰인들 만나기도 겁이 나지만 마음 편히 상담하고 교류하던 일상이 그립다. 요즘처럼 가족들이 소중한 때가 있었나 싶다.

콜레라 시대 19세기 말 남미는 내전에 시달렸다. 군인들은 주인공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어느 편이냐고 다그쳤다. 코로나 시대에도 내전을 방불케 하는 진영 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상대편에 대하여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표현도 나온다. 균형감각이 생명인 법조인들도 그 대열에 가세하여 거친 언사로 진영의 이해만을 앵무새처럼 대변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언제 종식될까? 영원히 바이러스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불길한 예상도 나온다. 인류 역사에서 기적처럼 출현했던 한 성인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인생의 화두로 삼고 싶었다. 인류가, 또한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서로 원수로 생각하는 집단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고 상생의 대안을 찾게 될 때에만 백만 송이 장미가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까? 역시 어느 시대에나 사랑은 몽상적인가 보다.

 

 

/정대화 대표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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