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이라는 가요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얼굴을 가린 가수를 음색과 가창력만으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가수는 몇 번을 들어도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떤 가수는 딱 한 소절만 불렀는데도 단박에 누구인지 알아낸다. 연주나 작품으로 연주자나 작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예술가가 추구하는 지향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는 것이고, 확연히 구별되는 독보적인 차별성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훈의 글은 항상 김훈의 글답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독보적인 문장과 독창적인 서사가 있다. 그래서 서점에 그의 신작이 나오면 주저 없이 집어 들게 된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도 그랬다.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간결하고 힘이 넘친다. 첫 문장을 접하고 나면 다음 문장, 다음 문단, 다음 페이지로 이어져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책 표지 날개에 적힌 이 문구가 그의 작품을 왜 자꾸 찾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아주 먼 옛날 ‘초’와 ‘단’이라는 부족 간의 이야기다. 사냥과 전쟁을 숭상했던 ‘초’와 농경과 문화를 중시했던 ‘단’은 공존하기 어려운 이웃이었다. ‘초’는 현재만을 살아가고자 했고, ‘단’은 역사를 이어가고자 했다. 사냥과 전쟁으로 단련된 ‘초’의 공격은 거셌고, 학문과 기술로 축적된 ‘단’의 성곽은 높고 단단했다. 치열한 전투가 이뤄지고 전쟁은 결국 끝나지만, 승리와 패배를 논할 수는 없다.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야백’과 ‘토하’라는 이름의 말들이 진짜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그저 그 둘의 이야기 배경일 뿐이다. 감정 없이 싸우고 죽이고, 공성과 수성을 반복하는 사람들에 비해, 말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찾고 다시 만나는 서사 속에 존재한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파괴성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생명성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는 마지막 작가의 후기에서 드러난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글을 읽어가며, 동물인 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됨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작가의 뛰어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태고 이전 이야기를 눈에 보이듯이 그려내고 만들어 가는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전작인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를 읽은 독자라면 새로운 느낌의 김훈 작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전작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추석 연휴 동안 편안하게 읽을 책을 찾는 분들에게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칼의 노래(김훈, 생각의나무)』 - 무인이자 시인, 그리고 인간 이순신의 면모

『현의 노래(김훈, 생각의나무)』 - 소리와 음악, 그리고 우륵의 삶의 이야기

『흑산(김훈, 학고재)』 - 조선 후기 신앙과 구원, 새로운 시대를 열망과 좌절

 

/장훈 전 서울특별시 소통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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