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하면서 요행히 대법원 파기환송을 몇 번 받았다. 올해도 필자 이름이 들어간 파기환송 판결문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본인 자랑 하자고 쓴 건 아니다. 최근 생각해본 내용을 공유해보자 글머리에 언급한 것일 뿐이다.

“대법원은 법률심이지만 사실관계를 건든다”라는 말이 있다. ‘채증법칙’이란 상고이유가 통용된다고 들었다. 필자 같은 구멍가게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사집단도 상고이유서에 “…에 관한 채증법칙위반, 사실오인”을 쓴다.

하지만 필자가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판례를 공부하면서 느낀 대법원은 더이상 채증법칙이란 상고이유를 원하지 않아 보였다.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에 채증법칙이란 말 자체가 없다. 판례를 보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배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채증법칙을 ‘자유심증주의’로 대체한 것으로 보이다. 민사소송법 규정에도 언급되어 있고(제202조), 논리와 경험의 법칙은 법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막연히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가 잘못되었다 하면, 심리불속행 판결이나 몇 줄 안 되는 상고이유 판결을 받는다. 아니면 “원심판결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은 상고법원을 기속한다(민사소송법 제432조)”는 말이 들어간 판결문이 날라온다.
오호 통재라. 의뢰인은 판결문에 나온 사실관계가 “말도 안 된다”하고, 변호사가 봐도 항소심의 사실인정이 이상하다. 판례를 추적해보니, 우리가 배운 3단논법에 맞지 않으면 대법원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법리-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관계-결론. 아무리 법리가 있어도, 사실관계가 법리에 들어맞지 않으면 대법원도 파기환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아니면 법리를 설명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다른 변호사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결국 사실관계를 확정해줄 만한 증거가 탄탄해야 한다.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심의 최종단계인 항소심에서 전력투구해야 한다. 법리 적용을 위해 꼭 드러내야 하는 증거는 바닥까지 박박 긁어 제출해야 한다. 이때 ‘항소심의 사후심화’라는 장애물이 등장한다. 비판받지만,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사람의 말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증거, 오염되지 않은 증거를 찾아야 한다. 법원도 구멍가게 변호사 사건과 대형마트 변호사 사건에 차이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들은 얘기. 모 언론 보도 사건에서 입증계획에 있지도 않은 증인신청을 계속 그것도 다 받아 주었다고 한다. 양형증인도 여러 명 채택됐다. 범인(凡人)의 사건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법원도 큰 사건, 중요 사건과 범인의 사건에서 차별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1심의 잘못을 왜 항소심 변호사가 몽땅 뒤집어써야 할까. 

하나 더, 판결문 공개도 있다. 적어도 언론 보도 판결은 보도 즉시 법원 홈페이지에 올려주었으면 한다. 요즘은 판결보도 언론기사를 내는 경우도 많다. 기자가 국민을 대표한다면, 국민은 당연히 언론이 보도한 판결을 볼 권리가 있다. 전면공개가 어렵더라도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 아닌가.

/김철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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