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판사의 정원은 3228명. 그들이 1년에 처리하는 사건 수는 법관 1명당 적게는 122건에서 많게는 34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아무리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많을 때는 하루에 열 건의 사건을 넘긴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이 이들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그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된 ‘노동’일까 상상하다 읽게 된 책이 ‘어떤 양형 이유’였다.

특이하게 변호사 출신의 판사가 쓴 책이라 더 눈이 갔다. 그는 법대를 졸업한 순간부터 고고한 법관이 아니라 사건을 의뢰한 한 개인의 정의를 위해 논리를 짓던 이였다. 판사로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는 그였다. 하지만 자신을 강간한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며 해맑게 웃던 소녀 앞에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고, 일에 깔려 죽기 직전에도 인간의 탐욕과 억울한 세상사에 대한 한 줄의 단상을 남기기 좋아했다.

판결문에서 혐의와 형량을 서술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은 문학적인 공간, ‘양형 이유’를 제목으로 한 이 책은 법대에 선 판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280페이지 남짓의 연한 살구색 책을 한번 직접 들여다봤으면 한다. 일평생 법정에 갈 일이 없을 수 있지만, 혹여 내가 만나게 될 판사라는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림짐작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판사는 부탁받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을 한다.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물리적인 노동이 필요하다. 그 노동은 성실하고 반복적이면서 때론 예술보다 창조적이고 감정적이다. 법 감정, 인권감수성, 법의 상상력. 이런 형용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실제 재판정이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라서다.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문을 외고 죄와 형량을 선고한 뒤 이어지는 양형 이유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 판사가 고민하며 써낸 몇 문장의 글. 사회의 법 ‘감정’과 판사 그 자신까지도 납득시키기 위한 마지막 확언. 각양각색의 탐욕과 억울한 사연이 매일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법정에서 누군가는 기획서를 작성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처럼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선언한다. 신의 권위를 대리하는 동시에 또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한 크고 작은 반항을 도모한다. 모쪼록 천계와 인간계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사이 어렵게 짬을 내 책을 써준 박주영 판사에게 감사하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저, 김영사)’ 23p.

 

 

/민지숙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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