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의 한 장르인 ‘still-Life’의 번역어 ‘정물화(靜物畵)’는 스스로의 의지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대상, 즉 자연(leven)이 정지(still)된 상태를 그린 그림이다. 그 가운데 꽃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는 인간의 세속적 삶을 중시한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와 폼페이 벽화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정물화는 기독교 신앙이 극에 달했던 중세와 인문주의에 치중했던 르네상스 시기에는 신화 그림을 장식하는 배경으로만 활용되는데, 이러한 법칙을 깨고 장르화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였다.

그림 1. 꽃을 따는 처녀, 폼페이벽화, AD.50-60.
그림 1. 꽃을 따는 처녀, 폼페이벽화, AD.50-60.
그림2. 얀 브뢰겔, Flowers in a Vase, 1606
그림2. 얀 브뢰겔, Flowers in a Vase, 1606

그 배경은 종교개혁이었다. 성 베드로 성당 및 바티칸 궁정 개축의 재원으로 판매되는 면죄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루터(Martin Luther)의 영향은 성상파괴주의를 낳았고, 교회로부터 주문이 끊어진 미술가들은 직업을 바꾸거나 자본을 획득한 신흥부자들로부터 초상화·정물화·풍경화 등을 주문받기 시작했다. 한편 16세기 후반부터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는 고대 본초학(本草學)으로부터 비롯된 식물학이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꽃 정물화의 탄생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식물도감으로 활용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밀한 꽃의 표현은 튤립(Tulip) 수입과도 연관되었다. 당시 튤립 가격은 희귀한 알뿌리가 저택 하나 가격과 맞먹을 정도여서 튤립은 신흥부자들의 주문화로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터키 출생이면서도 네덜란드의 국화가 된 튤립(회교도가 두르는 터번을 뜻하는 터키어 ‘툴리반드(Tuliband)’에서 유래)의 수입 열풍은 네덜란드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림3. 마사치오, 성삼위일체, 1425,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그림3. 마사치오, 성삼위일체, 1425,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그림4. 필립 드 샹페뉴, Vanitas, 1671
그림4. 필립 드 샹페뉴, Vanitas, 1671

아름답고 장식적인 꽃 정물화의 열풍 속에서 정물화에 담긴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해골이나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정물(모래시계, 떨어진 꽃, 깨지기 쉬운 유리잔, 거울 등) 등은 허무를 나타내는 ‘바니타스(Vanitas)’라 불렸고, 그 안에는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의 ‘성삼위일체(1425)’로부터 유래한 알레고리적 교훈이 담겨 있었다. 그림 하단의 석관(石棺)에 적힌 “나의 어제는 당신의 오늘, 나의 오늘은 당신의 내일이다”라는 뜻은 ‘유한하고 세속적인 삶의 덧없음’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과 죽음에 유념하라는 교훈을 담았던 것이다.

꽃 정물화는 영원성을 담은 듯 화려하지만, 현실 속에서 만개한 꽃은 이내 시들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네덜란드인들은 경제적 풍요 뒤에 오는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황금기였던 17세기 동안 대외무역의 성공과 해외에서 수입된 이국적인 문물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정물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경외와 사회적 반성을 배우고자 하였다. 죽음에 대한 역설을 희망으로 노래한 바니타스 정물화는 삶의 성찰성과 새로운 가치를 교훈 삼았던 당대인들의 시대 인식을 보여준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문화가 삶을 반년 이상 뒤덮은 오늘, 바니타스 정물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성찰과 치유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긍정의 메시지일 것이다.

 

 

/안현정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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