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는 흑백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영역이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증폭하는 실정이다. 사회 계층 간 이념적 대립이 갈수록 치열하여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파주의와 다양성의 상실은 혐오 사회를 초래하고, 생동감을 잃은 획일적 불모(不毛)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자연의 생태계는 종의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산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계곡 그리고 구름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산을 형성한다. 대나무가 좋다고 다른 종류의 나무를 배척하면 산이 아니라 대나무 밭(竹田)이 되는 것이다. 다양성이 적은 생태계는 황량하다. 다양성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양성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하여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하나의 조직 안에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다”라고 하였다. 이는 군자는 잘 어울리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짓되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화(和)의 철학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공존을 의미한다. 자신의 관점과 입장은 유지하면서도 그 생각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서로 화합하고 어울리는 것이 화이부동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자(荀子)는 왕제편(王制篇)에서 “고의이분즉화 화즉일 일즉다력 다력즉강(故義以分卽和 和卽一 一卽多力 多力卽彊)”이라고 하였다. 이는 “의로서 역할을 나누어 분(分)을 세우면 화(和)를 이루고, 화를 이루면 하나의 통합 (一)을 이루고, 하나의 통합을 이루면 힘이 커지며(多力), 힘이 커지면 강해진다(彊)”라는 뜻이다. 이처럼 순자는 화(和)가 국가의 강력한 통일적 힘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화의 철학에 기초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 소통하는 공감 능력을 의미한다. 공자의 인의사상은 자신에게 관대한 인(仁)이 아니라 타인을 어질게 대하며, 타인에게 엄격한 의(義)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준엄한 삶의 잣대를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을 수용하지 않은 폐쇄적 조직이 도태하고 몰락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용인하는 다양성과 관용은 지속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고 풍요롭고 다채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 조건이다.

 

/김용섭 전북대 법전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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