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면, 사법부를 인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눈’일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가격에 모든 역할을 맡기고, 정부의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경제활동을 실질적으로 유인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의 가격이며, 정부의 정책이 ‘보이는 손’으로서 나타나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정작 저서에 ‘보이지 않는 손’이란 용어는 단 한 군데 등장하지만 정부 시장개입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반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심판대 위의 재판관의 눈은 ‘보이지 않는 눈’을 가져야 한다. 디케의 눈과 같이 편견의 눈이 가려지고, 권력을 향한 눈동자가 감겨질 때 재판의 공정성은 실현될 수 있다.

몽테스키외가 저술한 3권분립의 원칙은 사법부가 보이지 않는 눈을 갖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행정부와 사법부와 입법부는 국가기관으로서 한 몸이지만 각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특별히 권력기관의 재판개입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기능성의 측면에서 행정부는 행정부의 일만 전담 해야 하며, 사법부의 재판업무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권력기관이 사법부에 권력을 사용하여 자기 사건을 재판하는 ‘셀프 재판’을 하게 되면 법치주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권력의 일탈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서 법치주의와 3권분립의 토대가 마련될 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눈은 적용되는 영역은 각기 다르지만,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전자는 시장의 가격이 후자는 법원의 판결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점에서 공통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사유재산권과 법치주의를 통한 국민의 자유보장이 결합될 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데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법이 곧 헌법이다. 1948년 최초로 제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눈을 위한 사법부의 독립과 보이지 않는 손을 위한 시장경제체제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영경제체제가 혼합되어 있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2년 후 발발한 6.25전쟁을 극복하고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 발판은 바로 제헌헌법의 제정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헌절이 국경일에서 배제된 것은 헌법의 가치를 망각한 태도인듯하여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6.25의 상흔 속에서도 지킨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는 사회 일각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