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여가부·백혜련·전주혜 의원·여변과 ‘여성이사제’ 정착 위한 심포지엄 개최

규제 아닌 해묵은 성차별 해소 … 기업 이사 다양성 확보 위한 제도 당위성 공유

 

내달 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른바 ‘여성이사제’가 도입된다. 이에 기업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기업 내 만연한 성차별에서 벗어나 여성 전문인력이 주요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연착륙과 향후 보완점을 논의하고자 각계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여성이사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현실적 필요사항과 제도적 개선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여성가족부(장관 이정옥)와 백혜련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을), 전주혜 의원(미래통합당, 비례대표),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가 공동 주최했다.

심포지엄은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의 환영사로 막을 열었다.

윤석희 회장은 “지난 30여 년간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에서 고위공무원단 여성임원 목표제 등 다양한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소기의 변화를 이룬 공공부문과는 달리 사기업에선 여성임원 비율과 지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는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해선 안 된다. 현재 남성 임원으로만 구성된 기업이라면, 2년간 유예기간을 감안하더라도 2022년 7월까지는 최소 1명 이상 여성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윤효식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 실장 대참)도 “성별 다양성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법의 이행력 확보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국회와 민관이 긴밀히 협력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축사를 건넸다.

백혜련 의원은 “정부와 국회의 노력으로 장관 18명 중 여성이 30% 이상 임명되고, 공공기관 임원 여성이 전체 21%까지 증가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여성 이사 한 명을 선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업문화가 점차 변화할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주혜 의원도 “여성이사제에서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사내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중간관리자급 양성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며 “여성 인재들이 숨은 편견을 깨고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평가받도록 국회도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찬희 변협회장은 “점점이 흩어진 일부 사례만으로 우리 사회가 실질적 양성평등을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이번에 도입된 여성이사제는 경제 분야에 성 평등이 자리잡고, 이사회 다양성을 확보해 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회장도 단상에 올라 심포지엄 의의를 되새겼다.

이복실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에 참여하는 여성 비율은 평균 3%대로 굉장히 저조한 실정”이라며 “많은 어려움 끝에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여성이사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OECD 국가별 2019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우리나라는 29개 회원국 가운데 2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유리천장 지수는 100점 만점에서 25점에 머물렀다. 회원국 평균 점수는 60점이었다. 지수는 여성 경제활동 참여, 관리직 진출 등을 토대로 산정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상장법인 성별 임원현황’에서도 같은 결과가 도출됐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기준 상장법인 2072곳의 임원 2만 9794명 가운데 여성 임원 비율은 4% 수준에 그쳤다.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도 1407개에 달했다. 전체 상장법인 중 67.9%에 해당한다.

자본시장법상 ‘이사회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는 여성 이사 선임규정 법제화가 가장 실효적인 개선책이라는 점에서 도입됐다. 명시적인 법 제도가 마련돼야 여성 경제활동 강화와 이사회 구성 다양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실제로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법 적용대상이 되는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법인에서 여성 임원 비율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 기준 상장법인 2148곳이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지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법인에 속한 여성 임원 비율은 지난해 3.7%에서 4.5%로 상승했다. 여성 임원 재직 기업 수는 지난해 85곳에서 98곳으로 늘었다.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도 지난해 기준 27곳에서 올해 45곳으로 1.7배 증가했다.

장현정 변호사(대한변협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는 “노르웨이,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이사회 구성 특례 규정을 마련한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며 “다년간 관련 제도를 정착시킨 결과, 해당 국가들은 여성 이사 선임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는 이사회 구성 특례 규정을 가장 적극 도입한 국가다. 2002년 노르웨이 기업 여성 이사 선임 비중은 6%에 불과했으나, 제도가 도입된 후 7년이 지난 2009년 여성 이사 비율이 40%까지 확대됐다.

프랑스는 2011년 ‘코페-지메르만(Copé-Zimmerman) 법’을 제정하고 근로자 500인 이상, 연간 매출액 5000만 유로 이상인 프랑스 기업에 이사회 구성 특례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제도 도입 2년 만에 프랑스 기업 내 비상임 여성 이사 비율은 2배 이상 증가했다. 2011년 당시 여성 이사 비율은 11.4%였지만, 2013년에는 26.8%로 나타났다.

한편 ‘여성이사제’ 법제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 강제력 부과를 위한 보안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희정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대외협력이사)는 “여성이사제 정착을 위해선 기업 세제 혜택 부여 등 이행을 독려하는 간접적 지원이나, 미이행 기업에 대한 과태료 규정 등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의 경우 이사회 구성 특례 규정과 더불어 미이행 기업에 대한 제재 규정을 두고 있다.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은 이사회 구성 특례를 준수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벌금 부과 △이사 선임 무효화 내지 공석 유지 △규정 충족까지 보수 지급 중단 △상장폐지 등 제재를 병행한다. 스페인의 경우 이사회 구성 특례를 준수한 기업에 정부 계약 우선권 제공 등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최희정 변호사는 법 강제력 확보를 위해 △공공부문 입찰 시 가점 부여 △조세 감면 △연기금 등 투자고려사항에 성별균형성 포함 △법률상 공시의무 도입 등 방안을 제시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 팀장 역시 여성이사제 정착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연기금 등의 투자지침으로 이사회 다양성 확보를 규정함으로써, 투자대상 기업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취지에서다.

여성 임원 풀(Pool) 구축과 여성인재 육성교육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윤아 여성가족부 여성인력개발과 과장은 “여성가족부가 자본시장법 개정에 대한 기업 인지정도 및 정책수요를 파악한 결과, 기업들이 여성 임원 후보군 부족을 애로사항 1순위로 꼽았다”며 “훌륭한 여성리더들이 기업 현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세계여성이사협회(WCD) 같은 여성 직능단체에서 영역별 여성 임원 후보군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을 규제가 아닌 기업 발전을 저해하는 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단계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희정 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선임한 여성이사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이사회 내에서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우려가 있다”며 “기업이 입법목적 당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변협은 여성 변호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여성 리더들이 불합리한 제약이나 차별을 겪지 않도록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변협은 지속해서 관련 법안 검토, 대안 마련 등에 힘쓸 예정이다.

 

/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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