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미(美)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 앤서니 파우치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내고 있는 전망입니다. 코로나19의 반향이 산업계 전반을 향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내변호사들의 업무에도 여러 변화가 생기겠습니다만 그 중 괄목해 볼만한 것으로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관한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불가항력 조항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폭동 등 양 당사자의 귀책으로 돌릴 수 없는 우연하고 통제불가능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한 책임을 면책하기 위한 조항으로서, 주로 계약서의 뒤쪽 한편에 관용적으로 삽입되어 소위 찬밥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조항이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류가 세상의 삼라만상을 상당한 부분 예견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졌지만, 금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그 효력 및 필요성이 재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도 지난 2월 중국 최대 LNG 수입업체인 중국해양석유는 코로나19를 이유로 프랑스 토탈 등에 화물인도에 대한 불가항력을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불가항력이 적용될 수 있을지는 구체적 사안의 개별적 사실관계에 따라 다르게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계약에 불가항력 조항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조항이 있는 경우에도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예시로 들고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영미법 보다는 ‘Force majeure’의 어원(語源) 국가이기도 한 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경우에 불가항력이 인정될 여지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내변호사로서는 불가항력 조항을 계약에 넣는 것이 유리할지 빼는 것이 유리할지도 기업의 포지션에 따라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어느 직종이 그러하지 않겠냐마는 변호사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법률 검토의 방향을 지속 보정하는 것이 필요하겠고 또한 무심코 넘기기 쉬운 조항에 대해서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사내변호사의 업무도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희범 변호사

삼성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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