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을 말한다. 미술에서의 미인그림, 이른바 미인도는 대부분 여성을 담았다. 왜 그랬을까? 과거부터 여성은 ‘감상’의 대상이지 ‘창작’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달한 사회에선 날씬한 사람들이,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뚱뚱한 사람들은 미인으로 인정받는다. 다산과 풍요, 종교와 의례 등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달랐다. ‘사회적 요구’가 그 시대의 미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미의 기준은 확실히 달랐다. 그리스에선 풍만한 8등신의 여성이 미인이겠지만, 동양 그것도 유교적 보수성이 발달한 조선에서는 가늘게 내리 깔은 단아한 5등신의 여성이 선호되었다.

▲ <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제작 추정. 루브르박물관 소장

서구미의 절대적 기준, ‘밀로의 비너스’를 살펴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이 조각상은 1820년 에게 해의 남서쪽 밀로스 섬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높이 2m의 비너스상이다. 광고에도 많이 등장할 만큼 유명한 조각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정면에서 배꼽, 중앙선과 다리가 S라인을 그리면서 풍만한 인체미를 드러낸다. 이렇게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라고 하는데, 이 포즈는 미인대회 수영복 심사의 전형이 되었다. 풍만한 8등신의 인체와 또렷한 서구형 이목구비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의 기준이었던 셈이다. 훗날 비너스라는 이름의 누드화는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서게 되는데, 이에 대한 흥미 있는 논의는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 신윤복의 <미인도> 비단에 채색, 113.9X45.6cm. 간송미술관 소장

반면, 붓으로 빚은 가냘픈 ‘조선의 비너스’를 살펴보자. 신윤복이 그린 애절하고 그윽한 눈빛의 5등신 미녀 ‘미인도’가 그것이다. 미인도는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 속에 섬세한 내면을 담아 신윤복이 여자라는 풍문을 만들기도 했다. 가녀린 자태 속 애절한 눈빛, 앞의 비너스 조각상에 비교하면 얼굴 크기도 뚜렷한 윤곽도 몸매도 노출되지 않았지만, 한번 그 앞에 서면 발길을 돌리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가졌다. 가냘픈 여인은 그림 안을 가득 채우고, 그림 밖 화면을 꿈꾸듯 몽롱하게 바라본다. 초승달 같은 눈썹, 마늘쪽 같은 코, 앵두 같은 입술, 학같이 길쭉한 목. 서구적인 시각에는 전혀 맞지 않는 움직임과 어색한 몸짓이지만, 어느 한 군데 넘치거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 그림 옆 제발(題跋: 글씨) 속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작고 여린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여인의 마음을 내가 붓으로 어찌 이렇게 잘 그려 냈을까.” 서구미인과 달리 동양의 미인은 겉모습은 물론, 내면의 애절함까지도 담아내야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적 분위기와 요구에 따라 미인도는 다르게 읽힌다.

 
 
 
/안현정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