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 개원이 화두에서 멀찍이 사라진 지금 새삼스럽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예년과 달랐다. 손소독제와 비닐장갑이 투표소에 앞서 방문객을 맞았고, 미소가 있어야 할 자리엔 마스크가 가려섰다. 말 그대로 재난이 되어버린 코로나19는 ‘마스크 의무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자생형 시민규범을 만들어냈고, 5선 의원도 가져보지 못한 법 이름의 주인공을 꿰찼다.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것을 혁명이라고 했는데, 이번 사태를 ‘1차 코로나 재난 혁명’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다만 이 혁명의 기세는, 여의도에까지는 미처 닿지 못한 듯 하다. 보좌진들의 선거는 특별히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월이 채 가기도 전에 두 번째 고향으로 낙향했다. 공무원증 대신 선거사무원 표찰을 매고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았다.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손가락으로 각자의 숫자를 그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밤이 새도록 기사와 씨름하며 기자와 다퉜고, 보도자료의 한 글자, TV토론회의 한 마디를 위해 서로의 자료를 조사하고, 서류를 매만졌다. 동별 투표결과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며 현황판을 만들었고, 숫자가 그려질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다. 군 전역 이래로 처음 달력에 X자를 그리며 오매불망 기다렸던, 도저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4월 15일이 결국 왔다. 승자와 패자가 생겼다. 웃는 사람과 우는 사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갈라졌다. 우리 보좌진들도 저마다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며칠 전만 해도 한 방에서 같이 자고 먹고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다른 길로 걸어야 했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판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나는 패자의 쪽이다. 나를 고용해 사용하던 사장이 사라졌다. 사업이 망했다. 내 고용보험 비용을 대줄 직장이 사라졌다. 서글프기도, 후련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몸짓으로 움직였던 이 시간들은 내 삶에 뺄 수 없는 몇 가지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글을 닫으려고 보니, 보좌진을 AI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뉴스를 스쳐간다. 상상해보면 재밌을 것도 같지만, 내가 아는 보좌진의 업무 범위는 컴퓨터가 흉내낼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초월해 있다. 주제넘은 첨언이라도 굳이 AI를 끌어온다면, “AI가 보좌인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국회 업무 어디에 AI를 활용할 수 있을까”가 보다 적절한 에임포인트가 되리라 본다.

의원들의 몸싸움이 개그 소재가 되고, 말씀이 희화화되며 국회와 정치 자체가 웃음거리가 된 느낌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수천 명의 참모들은 수백 명의 의원들의 훌륭한 연기를 위해 사투하고 있다. 이른 전역을 하면서 동지이자 전우로서, 전장의 파트너로서 박수를 보낸다. ‘비정규직 공무원’이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만능 코디네이터’로 오늘도 방 한 켠을 묵묵히 지켜낼 보좌진들의 새로운 4년을 응원한다.

 
 
/이상훈 변호사

주식회사 핀크 준법지원팀

4차산업혁명융합법학회 집행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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