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좀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재정(財政)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재정을 둘러싼 많은 법령들이 있고, 검토 이슈도 많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모든 나라들이 곳간을 열어젖혔다. 위기상황이라 재정투입이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어디에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자와 빚을 지는 상한도 정하고, 위기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법으로 미리 정해두자는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재정준칙’이다.

재정준칙이 가장 강하게 설정된 나라는 독일이다. 헌법인 기본법에 적자와 채무의 한도를 정해두었다. 일명 ‘채무브레이크’다. 물론 긴급사태 때는 그 기준을 넘어도 된다. 단, 기준을 넘게 되면 재정확충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재정준칙 위반에 대해서 연방헌법재판소가 실제로 사법심사를 한다. 우리는 법률로 준칙을 정할지, 대통령령으로 할지 아니면 재정당국의 내부 기준으로 할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법률로 정할 가능성이 크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10%를 넘는 반면, 우리는 40%대에 불과하니 준칙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IMF나 OECD가 제시하는 기준은 60% 수준이어서 아직 여유는 있지만 고령화 사회에, 위기가 상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준을 세워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준칙을 정해두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기준을 맞추기 위해 좋은 시절에는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충분한 버퍼를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내부적으로 세출항목들은 자연스럽게 경쟁을 하게 되고, 지출에서 필요성과 효율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단점도 있다. 재정당국이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단년도 기준의 제1세대 준칙과 달리 수년의 시간을 두고 준칙을 지키도록 하는 중기기준 제2세대 준칙이 나왔다. 이 방식이라면 법률로 준칙을 정하더라도 재정당국의 재량적 정책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

상시화된 감염병과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정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지출을 둘러싸고 각자의 입장에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되기도 한다. 기술사회의 도래와 함께 정치권에서는 대규모 재정투입이 필요한 기본소득제도의 아이디어도 제시되고 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은 철인은 현명하고, 복잡한 이해 속에서 중립적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인간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수의 이해를 조절하여 모은 법이 필요한 것이다. 법은 적어도 뜨거운 돈을 차갑게 다룰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