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더불어민주당,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와 법·제도 개선 의견 나눠
피해자 지원 부족 … 불법 촬영물 삭제 의무 부과 등 정보통신망법 개정 제안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 및 법·제도 개선 관련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제2의 n번방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제·개정 작업을 매듭짓기 위해서다.

일명 ‘n번방 재발방지 3법’으로 불리는 형법, 성폭력처벌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로써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기준이 한층 상향됐다. 반면 불법 촬영물 유통으로 인한 2차 피해 근절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변협은 긴급좌담회에서 변협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위원장 이경아)가 마련한 개선 의견서를 공유했다. 의견서에서는 가장 변화가 시급한 부분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을 꼽았다.

변협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 및 법·제도 개선 TF 위원장이기도 한 이경아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에 대한 처벌 수위는 강화됐으니 이제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와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해 법·제도를 개선할 때”라면서 “특히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삭제 및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하도록 의무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메신저 대화방을 통한 불법 영상물은 삭제가 어렵다. 메신저 특성상 일대일 또는 비공개 대화방에는 접근이 불가능해 피해가 발생했는지조차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피해 발생을 인식하더라도 비공개 대화방에서 공유됐다면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가 아니어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를 삭제할 의무가 없는 상황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구갑)는 “디지털 성범죄물 전송을 근본적으로 뿌리뽑기 위해서는 기업, 특히 인터넷 사업자 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 “업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망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불법 촬영물 피해자 보호 조치나 유통 방지에 소홀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이미 동법 위반 시 정보 주체가 입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규정이 마련돼 있다.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이 3월 31일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내용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포함돼 있다. 개정안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뿐 아니라, 그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해외사업자에게도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역외 적용 규정과 국내 대리인 제도도 개정안에 포함했다. 불법 촬영물 다수가 해외 서버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 밖에도 변협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는 △청소년성보호법 개정 후속 조치 △소년법상 소년을 만 나이가 아닌 연 나이로 개정 △성폭력처벌법상 불법 촬영물 등 소지, 구입, 저장, 시청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 △성폭력 처벌 법령 단일화 등을 남은 과제로 지적했다.

이찬희 협회장은 “그간 디지털 성범죄로 고통 받아온 사람이 많은데도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모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면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돕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변협은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온라인 그루밍’ 금지 법안 등이 입법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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