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휴교와 휴업이 잇따르면서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한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도입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방식이 공간의 효율적 활용, 이동시간 절감, 교통, 환경문제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의견과 함께, 업무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등 사회적 논란도 적지 않다. 구성원의 편리와 효율적 업무수행을 위해 여건에 맞게끔 적절히 순차적으로 도입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부작용도 적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급작스럽게, 그것도 본연의 목적과 달리 ‘감염병 예방’이라는 차원에서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어색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칫, 달갑지 않은 추억 정도로 코로나 사태 종료와 함께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버릴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 이전에 원격, 재택근무를 큰 흐름으로 인식하고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비중을 높이면서 안정된 시스템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북유럽의 여러 국가들이나 토요타 자동차와 같은 유수 기업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우리 재판운영 실태는 더 심각한 실정이다. 2020년 4월 중순 현재 많이 정상화된 상태이지만 코로나 초기 한두 달간은 거의 대부분 재판이 올스톱되고 말았다. 낯설지만 새로운 업무방식으로 대처하는 민간과 달리, 대부분 재판부가 휴정을 결정함으로써 온 나라의 재판업무가 마치 동면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정지해버렸다. 우리 사회 분쟁해결 기능이 두 달 이상 마비된 셈이다. 예상치 못한 사태이기에 재판업무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겠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재판이 올스톱 되다시피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쟁점 정리와 같은 절차마저도 법원 내 특정 장소에서 당사자 간 대면을 통해서만 재판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판의 공정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법서비스, 효율성 차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불편하고 신속하지 못한 재판시스템에 호의적이지 못한 국민들로서는 지금의 이런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원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상재판을 시범운영하면서 민사소송규칙 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지만, 일선 재판에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전에도 회의폰(컨퍼런스콜) 형태의 변론이나 쟁점절차 진행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했는데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더구나, 2007년부터는 민사소송규칙 제70조 제5항에 “재판장 등은 기일을 열거나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양쪽 당사자와 음성의 송수신에 의하여 동시에 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3항 및 제4항에 따른 협의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변론준비절차를 회의전화 형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근거 규정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거의 시행하지 않으면서 사문화되고 말았다. 필자 역시도 23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이런 형식의 재판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이 규정의 존재마저도 이번 기고를 통해 처음 알았다.

재판운영이 왜 이렇게 되어 왔을까?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특정한 장소에 불러 대기시키고 순차적으로 사건진행하는 현재의 재판 시스템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하지만 법원 특히 판사 입장에서는 나름 효율적이면서 큰 불편이 없었다. 재판시스템 개선에 법원이 적극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사건 관계자에 대한 언행과 친절을 강조하고 야근까지 불사하지만, 이와 같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재판서비스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법원은 대면 재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면이 절실하지 않은 재판은 되도록 회의전화나 화상을 통해 재판을 진행하면 전체적인 법정 출석횟수가 줄게 된다. 재판 운영방식이나 재판의 성격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의 변호사 경험으로는 출석횟수의 절반 정도는 비대면 재판으로 대체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만성적인 법정 부족문제, 법원 인건비 절감 문제 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아울러, 법정 대면을 전제로 해서 정해져 왔던 암묵적인 재판의 룰들, 예를 들어 한 번 속행되면 최소 3~4주 뒤의 날짜로 미뤄지고, 그것도 해당 재판부가 법정사용 가능한 특정요일만 진행 가능했던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 재판의 특성에 따라 날짜와 시간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사자 배려가 가능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분쟁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의식변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화상재판 시스템만 도입한다면 사문화된 소송규칙 제70조 제5항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사회구조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부디 코로나 종식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그런 경험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광석 변호사

서울회, 법무법인(유) 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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