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에는 평균 2~3년 주기로 교체되는 공무원들과 외무공무원법 제32조에 의거해 공관에서 근무하는 행정직원들이 있다. 전자가 예외 없이 한국국적자라면 후자인 행정직원은 국적에 따라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분되고,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더라도 국적에 따라 근로계약서상 준거법이 달라진다.

동일 사업장 내 준거법령이 상이하다보니 연차, 병가, 수당 등 근로조건의 차이와 유불리가 발생하여 공관 행정직원 간 인화 제고에 어려움이 있다. 사업장 내 근로조건은 각국 노동법보다는 노사 간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따라 구체화 됨을 전제로 하면서, 필자가 현재 거주 중인 스위스의 연방법과 우리 노동법령 간 몇 가지 차이를 짚어 본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스위스 연방채무법의 제10장은 개별근로계약, 특정근로계약, 단체협약 및 표준근로계약, 강제조항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나 일부 강제조항 외에는 최소기준만을 제시할 뿐 구체사항은 노사 간 합의에 맡긴다.

이는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스위스의 정치문화와 국민정서가 사회법에 반영된 측면이 큰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전반적으로 기업과 사용주의 경영권을 보다 우호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해고(Dismissal)’ 제한 등 관련사항이 비중 있는 반면, 스위스 연방채무법은 해고 대신 ‘해지(Termination)’에 관해 규정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보다 무게를 둔 듯하다. 스위스에도 유무기 근로계약이 존재하나 무기계약의 경우라도 쌍방의 합리적 필요가 있다면 사전 고지를 통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글로벌 유수 기업의 본부 및 생산시설 등이 스위스에 대거 소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친기업 요소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고용안정성 측면에서는 외국인 행정직원이 한국인보다 불리하다.

연차 유급휴가의 경우 우리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르면 근로자가 연 20일의 유급휴가를 받기 위해서는 대략 12년의 계속근로기간이 필요한 반면, 스위스 연방채무법 제329a조는 1년차라 할지라도 최소 4주의 유급휴가를 근로자에게 부여토록 강행하고 있다. 또한 휴가는 반드시 2주 연속 사용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병가의 경우, 우리 운영지침은 병가 기간 중 평균임금의 60%를 근로자에게 지급하게 하나, 스위스 노동관행에 따르면 최소 20일의 유급병가가 가능하다. 스위스 기준으로 연차 및 병가는 한국인 행정직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이 밖에 한국인 행정직원은 근로자의 날에 유급휴일로 쉬나, 외국인 행정직원은 출근한다. 또한 외국인 행정직원에게는 주거보조수당, 특수지근무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는다.

주재국마다 노동법령이 달라서 각 공관을 개별사업장으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까지 외교부는 전체 공관을 동일사업장으로 묶어 본부에서 행정직원 정원, 임금지급 등을 총괄하고 있다. 뾰족한 수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한 지붕 세 가족’과 같이 갈등을 넘어 이해하며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마치 독어, 프랑스어, 이태리어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스위스처럼 말이다.

 
 
/임성균 주제네바대표부 2등서기관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