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본질은 입법이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행정과 사법은 이미 만들어진 법률에 의거하여 집행·적용된다. 따라서 입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까지는 공지의 사실이다.

이어서 “그러니까 법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말을 내뱉기는 무척 쉽다. 하지만 일선에서 법제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입장에서 ‘법안을 잘 만드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법제를 세 단계로 서술하고자 한다.

가끔 동료들끼리 “법제에 만점이 있기를 하나, 정답이 있기를 하나”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OO청구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고 싶다. 이에 맞춰 현행법을 개정해 달라”는 의뢰서를 받아들고 한숨 쉬는 동료를 달래는 말이다. 입법목표가 뚜렷하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법제의 수단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따라서 현행법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방안을 찾아낸다. 법의 개정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 법제의 첫 단추다.

현행법의 문제도 파악했고 구체적인 해결책도 마련했다. 그러면 두 번째 작업에 돌입한다. 그 구체적인 해결책을 법의 언어로 녹여내는 과정이다. 즉 일상적인 표현을 법문의 표현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법문은 되도록 쉽게 쓰려 노력하고 독해를 어렵게 하는 일본식 표현의 사용은 지양한다. 일상어를 법의 언어로 정제시키는 작업의 목표는 실제로 법을 적용 받는 국민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문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함에 있다.

다 끝난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작업이 있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법률이 정말 필요할까?” 입법기관에서 입법권을 잘 행사해 적절한 법안이 만들어지면 그 혜택은 그 법을 적용받을 국민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불필요한 입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행정의 낭비는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비용이다. 법안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입법의 필요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따라서 굳이 불필요한 입법이라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의뢰인을 설득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

작년 말 한 간담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가 방청석에 앉아있던 분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되었다. 당신의 억울함을 입법으로 해결해달라고 주문하셨다.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필자도 그 억울함을 달래드리고 싶다. 그런데 법률이라는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도려내는 것만으로 단순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치 못한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입법 의도에는 감정이 담길 수 있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법제 과정은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처럼 법제의 세 단추가 모두 균형감 있게 잘 끼워졌을 때라야 맞춤옷처럼 잘 만들어진 법률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법제를 맡고 있는 국회공무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잘 지어진 법률’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세경 변호사·법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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