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2주간의 말레이시아 변호사 교환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지금도 눈 감으면 눈부신 쿠알라룸푸르의 야경과 친절한 사람들, 특유의 냄새까지도 선연히 떠오르는데,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두고자 한다.

2. 말레이시아 변호사시장

연수 첫 날, 말레이시아 변호사협회에 공식 방문하여 그 곳의 변호사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전체 변호사 19,446명 중 여성이 55%이고 그 중 66%가 40세 이하의 젊은 법조인들이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영국 사법시스템을 토대로 형사사건의 경우 인도 판례가 일부 적용되기도 하는데 이슬람 율법(sharia)이 적용되는 사건은 별도의 관할 법원에서 다뤄지는 한편, 코타키나발루로 유명한 동부 섬지역(Sabah & Sarawak)은 별개의 변호사협회가 설립되어 있다고 한다.

▲ 사진: 장명훈 변호사 제공

기간 중 연방대법원(Istana Kehakiman)에 방문하여 실제 재판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근엄한 재판정의 분위기속에서도 히잡을 쓴 판사를 포함한 3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재판부와 변호사간에 활발한 질문과 변론이 오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3. 사람들

▲ 사진: 장명훈 변호사 제공

배정받은 로펌 anad&noraini에서 나와 동료 김범상 변호사를 지극히 챙겨주었던 Lisa 변호사는 몇 해 전 같은 교환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외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간 경험은 물론, 훌륭한 한국어 실력으로 나의 짧은 영어를 보완해주었다. 한류 광팬인 그녀가 홍조 띈 얼굴로 박유천·지드래곤·박재범 등 오빠들의 이름을 암송하던 때 앞에 있던 아저씨들의 심기가 약간 불편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부동산 담당 Hema 변호사는 친절하게도 실제 부동산 거래 계약서를 보여주며 leasehold 방식을 포함한 특유의 제도와 절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인도 계통 말레이인인 그녀는 유명한 힌두사원이 있는 바투동굴에 직접 동행해주기도 하였는데, 식사를 함께 하며 열한살 아들을 둔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하였다.

로펌 대표 Dato Anad 변호사는 이슬람 우대 정책으로 인한 말레이시아 사회의 더딘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들려주었는데, 소수민족 출신의 성공한 변호사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 말레이시아가 한국의 성공을 배워야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깊은 통찰과 식견을 느낄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변협과의 MOU 체결식에서 만난 Zamri변호사는 태국 접경 Perlis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면서, 핸드폰을 꺼내 남이섬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초면의 한국변호사를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다.

이들 변호사들 이외에도 식당 종업원·그랩 기사는 물론 길에서 만난 모든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친근했다. 한국인에 대한 동경이나 학습된 친절함이 아닌 진심어린 그들의 환대는 타인에 대한 경계와 수직적 관계에 익숙한 평범한 한국인인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4. 음식과 종교

첫날 말레이시아 변협의 환영 점심 메뉴는 태국음식이었고, MOU 체결 후 공식 만찬은 인도식당이었으며 로펌 대표가 점심을 대접한 곳은 중국 식당이었다. 왜 말레이시아 음식이 아닌 외국음식만 소개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며칠 후 풀렸는데,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그것들은 모두 ‘말레이시아 음식’인 것이었다(말레이시아는 대략 말레이인 6 : 중국계 3 : 인도계 1로 구성).

식사와 함께 항상 커피나 차를 곁들이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는데, 이렇게 풍성하게 한 끼를 먹어도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였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시내 곳곳에 푸드트럭이 차려져 다양한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슬람 국가이기에 방문기간 동안 금주를 각오하였으나 시내 도처에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바가 즐비하여 때때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다만 술과 담배는 물가수준에 비하여 비싼 편이었다.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며, 같은 이슬람교도 사이에도 히잡을 쓰지 않은 사람부터 부르캅을 착용한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름날씨에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명절 분위기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흥겨워 보여서 근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된 한국의 모습과 대비될 정도였다.

5. 도시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중심으로 시내 곳곳에 TRX 등 고층 오피스시설이 개발 중에 있으며, Bangsar·Mont Kiara 등 고급 상업·주거지역의 형성도 인상적이었다.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행정수도가 소재한 신도시 Putrajaya는 세종특별시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데 조용하게 정비된 세련된 도시의 모습은 쿠알라룸푸르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영어가 공용어인 말레이시아는 인근 홍콩의 정치적인 불안정과 싱가포르 대비 저렴한 비용을 무기로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6. 마치며

귀국 전날 말라야대학(Universiti Malaya) 캠퍼스에 방문하여 로스쿨 건물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방학 중임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변호사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는 한 편, 1시간의 시차보다 조금 더 느리게 흘러가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삶과 여유를 보며 행복한 삶에 대해 잠시 자문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언제나 여름인 그 곳, 말레이시아에 언젠가 다시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장명훈 변호사
서울회, 법무법인 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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