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자신이 파는 제품에 대한 사과 편지를 봐 줄 수 있냐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사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인은 은근 띄워주는 듯 압박을 넣으며 “넌 사과문 많이 써 봤을 꺼 아니야? 나 좀 도와줘!”라고 했다. 이후 간간이 접하는 공적 인물 및 정치인의 사과문 또는 특정 기업의 사과문으로 관심을 확장하였다.

몇몇 서적과 논고에 따르면, 사과란 사과 요구-사과-응답(수용 또는 거부)의 3단계를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

사과 요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피해를 당한 사람이 사과로 화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사과 요구를 받는 측의 사과 내용은 ①잘못된 내용과 피해발생 사실을 적시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단계 ②실수의 소재가(또는 대승적 차원에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단계 ③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서술하는 단계 ④향후 계획(회복조치 및 장래의 변화상 제시)을 밝히는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이다.

이후 공은 피해자로 넘어간다. 만일 사과하는 측이 잘못한 여럿 중 하나만 적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치거나(①관련), 엉뚱한 사안에 대해 사과하거나, 기존의 관행이나 세태, 나아가 세상원리를 탓한다면(②관련) 그 사과는 거부될 수 있다. 언어 외에도 맥락 즉, 사과를 하는 측이 장기간 보인 행위나 견해를 대조하여 단기적인 진정성이 부정될 수 있다.

적정한 수준에서 봉합될 찰나에 양 당사자 외의 제3자(언론, 유관단체, 지역사회)가 개입하여 개인적 수용을 무시하고 잘못의 전모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면서(③관련) 그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과가 어느 한 공동체를 향하는 경우 그것을 수용할 권리가 누구에 있는지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되며, 개인에게 수용이나 거부의 수준을 자유롭게 결정할 여지를 남기는 사과문 작성이 통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더 많은 질문과 모색을 불러일으키는 와중에 작은 유익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강훈 변호사

서울회·두산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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