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바쁨과 한가함을 절충하여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바쁘게 앞만 보고 질주하던 삶에서 내면의 평온과 정신적 희열을 느끼는 삶으로 생활 패턴이 변하고 있다. 그야말로 소소하면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대세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동양 선비의 삶은 출사(出仕)와 은일(隱逸)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나뉘었다. 출사란 관직을 얻어 공적 영역에서 자기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은일은 관직에서 벗어나 강호나 산림으로 들어가 세속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양자의 조화를 반영하는 백거이의 중은(中隱) 철학은 살면서 잘 풀릴 경우에는 천하를 위해 봉사하고, 뜻대로 안돼 궁할 때는 신독하면서 홀로 자기를 수양하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삶의 방식이다.

중당(中唐)시대 백거이는 자가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로 29세에 진사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관료로 출세한 가운데 사회비판적인 풍유시를 지으면서 중앙 관료조직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순조로운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분을 넘는 월권적 행위로 고위 관료의 반감을 샀고, 40대 중반에 지방관직으로 좌천됐다. 이른바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인생의 굴곡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듯이 그 역시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백거이는 비록 지방관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관직생활을 그만두면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 중앙 고위관료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시와 술과 거문고를 벗 삼는 사적 취미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백거이는 젊은 시절에 품었던 출세지향적 관료의 길 대신에 유유자적한 지방관직에 만족하면서 취음선생(醉吟先生)이라는 호처럼 술을 즐겨 들면서 한적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백거이는 평생 동안 2800여수의 시를 지었다. 당시 그는 지방관직에 머물렀던 덕에 환관의 발호에 의해 중앙 고위관료가 대량 척살되는 감로지변(甘露之變)도 피할 수 있었다. 백거이는 오늘날 법무부장관격인 형부상서를 71세에 사직하고 40여년의 관직 생활을 마감했다. 그 후 75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자신의 이름처럼 낙천적으로 보냈다.

오늘날 법률가는 대부분 바쁜 일상의 시간(Chronos)을 살아간다. 미친 듯 정신없이 보내는 신기루와 같은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많은 것이 보인다. 일터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소소하고 행복한 시간(Kairos)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바쁜 삶을 사는 법률가는 1200여년 전 이미 워라밸을 실천한 백거이로부터 균형있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김용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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