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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병상에서 흘린 회한의 눈물
임태유 변호사  |  new273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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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승인 2019.08.26  12: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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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過猶不及)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희한한 병명으로 꼬박 2주간 병원 신세를 졌다. 흔치 않은 증상 때문인지 정밀검사와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면서 소관별로 의사들의 문진과 회진이 잇따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시간 이상씩 치료를 받았다. 입원 후 사흘째부터는 본격적인 치료가 강화됐고 그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혹시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전 처음 해 본 입원인지라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한편, 2인실인데 건너편 병상에는 50대 중반 산재 환자가 장기간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 종일 입을 여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간병인도 가족이 아닌 직업 간병인인데 말수가 적었다. 그러다 보니 병실은 더욱 침울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밤이면 외로움이 엄습했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연스레 지난 날의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됐다.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매사에 과욕을 부리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삶의 모습이 영상을 보듯 선명하게 비춰진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몇번이고 자제를 다짐했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 이 나이 되도록 크게 아파본 일이 없어서 아직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면서 무리를 해온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역시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교훈이 새삼 진리임을 깨닫게 됐다. 입원 후 일주일쯤 지나자 차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문득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우 생각이 났다. 유난히 감성이 풍부하고 정서가 윤택했던 아우였다. 고교 시절에는 ‘경희’라는 교지편집에 열을 올렸고 대학 저학년 때는 ‘대학신문’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13년간의 검사 시절에는 자작시를 곧잘 쓰기도 했고 교회에선 찬양대원으로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 그가 변호사 개업 후 한참 잘 나가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반식물인간 상태로 12년째 병상에 있다. 얼마나 답답하고 미치도록 지루했을까? 가끔 문병을 갈 때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애원하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기가 일쑤였다.

‘형, 나 좀 살려줘. 더는 못 견디겠어.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차라리 죽고 싶어. 나 혼자서는 안돼. 쉽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제발 나를 도와줘.’ 침묵 속에 부르짖는 절규가 들리는듯 했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입원 초기에는 초라하고 흉한 내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가족, 친지 외에는 문병을 사양했었다. 그런데도 지인과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메일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서 쾌유를 빌어주는 자상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어느 친구는 새벽녘에 전화를 걸어왔다. 아내가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아보니 새벽예배에 참석했는데 쾌유를 비는 중보기도를 해주겠다면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으라고 했다. 눈물겹도록 간절한 중보기도가 이어진 다음, 찬송가 528장을 손수 불러주었다.

“주여 당신의 뜻이라면 나를 고쳐 주소서 / 머리 위에 기름 붓고 주 앞에 엎드려 /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간구하는 나의 몸을 / 지금 주의 약속대로 곧 고쳐 주옵소서.”

시들했던 나의 신심을 일깨우는 단비 같았다. 고요한 새벽에 들리는 기도와 찬송 소리는 나의 심금을 적셔주었다. 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참회와 회한의 눈물이었다. 아무튼 짧지 않은 삶을 이어오면서 덕을 쌓은 것은 별로 없지만 크게 모나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되고 흐뭇했다. 그런데 거의 매일 업무상 연결지어온 몇몇 후배들은 입원 기간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평소 내가 부덕한 탓으로 돌릴 수도 있으나, 그들의 비정함과 무례가 참으로 야박하게 느껴졌고 쉽게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다시 다짐을!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의 모든 조직과 그 기능이 쇠퇴하고 저하되기 마련이다. 이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삶을 마치는 그 날까지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풀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임태유 변호사(광주회·법무법인 새천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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