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이 지난달 말부터 휴정기에 들어가면서, 극히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판이 중단됐다. 법원 출입 기자들도 휴정기에 맞춰 휴가를 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은 재판이 없는 휴정기엔 기사 발굴에 더 열을 내야 한다. 재판 일정이 없는 여유를 틈타, 준비하던 기사와 관련된 판결문을 검색하기 위해 대법원 3층 특별열람실을 찾았다. 그런데 휴정기가 무색하게 열람실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대기자가 있었다.

대법원 특별열람실에서 판결문을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는 고작 4대. 4대의 컴퓨터로 전국에 있는 법조인과 사건관계인, 기자 등 모든 국민이 판결문을 검색해야 한다. 물론 2주 전에 미리 예약이 가능하지만, 4대밖에 되지 않으니 순식간에 마감되기도 하고, 언제 어떤 취재를 하게 될지 모르는 기자의 업무 특성상 미리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열람실을 찾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오전부터 무작정 기다리다가 예약자가 없는 틈을 타 잠시 컴퓨터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예약 없이 대기하는 인원마저도 많다 보니 한참을 대기해놓고도 허탕을 치는 날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다들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여기 밖에 검색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올 초부터는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정된 민·형사사건 판결문을 검색할 수 있게 됐다. 피고인과 사건번호 없이, 특정 검색어만으로도 검색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확정된 판결문만 열람할 수 있어 상고심이 진행 중인 사건의 1·2심 판결문은 볼 수 없고, 열람이 가능한 판결문마저도 사건관계인 등이 비실명화 처리돼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헌법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한다’고 하지만, 판결문 열람이 이렇게나 어려운 이유는 개인 정보 문제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확정 실명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는 미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문도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를 택한다. 특히, 공무원인 법관의 공무수행으로 작성된 판결문은 공적 문서(Public Document)로 공공의 재산이라 보고 있다. 개별 판결로 이루어진 판례법을 근간으로 하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도 판결문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미국의 사례를 주목해 볼만하다. 물론, 성폭행 사건이나 가사 사건 등 일부 사건엔 예외를 두는 등 개인 정보 유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신중한 접근이 필수겠지만, 그동안 판결문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법원에서도 이제는 전향적인 논의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유호정 MBN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