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벚꽃이 평년보다 일찍 필 것이라고 여기저기서 보도해준 덕에,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3월부터 한껏 마음이 들떴다. 봄이란 무릇 ‘화란춘성(花爛春盛)’해야 제 맛이 아닌가. 그러나 서초동에서는 매번 그런 봄에 배신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빌딩 숲 사이 어느 모퉁이에도 자그마한 벚꽃나무 한 그루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꽃보다도 더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아이 둘을 도맡아 키우며 이혼을 하게 된 의뢰인이 있었다. 상대방은 이혼 사유가 명백히 있었음에도 의뢰인도 잘못한 것이 있다며 역정이었다. 나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조정을 신청했고, 상대방에게 아직 한창인 사건본인들의 미래에 대해 설득을 했다. 상대방은 부성(父性)으로 양육비 산정 기준표에 매이지 않은 높은 금액의 양육비를 약속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의뢰인이 가장 우려한 것은, 상대방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을 가능성이었다. 아무리 미지급 양육비를 받아 낼 다양한 장치들이 있다 하여도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의뢰인이 또다시 감당하기에는 큰 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정 결정이 나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대방은 군소리 없이 매월 양육비를 지급해오고 있다며, “변호사님 덕분이에요”라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또 다른 소식은, 참고인이었지만 혐의가 있어 5회 이상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한 의뢰인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지 않고 지리했던 조사가 마침내 종결됐다는 소식이었다. 의뢰인은 검찰청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경찰서에도 한번 안 가본 내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냐”라며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변호사님 아니면 여기 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내게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선임 변호사님께서 봄도 왔는데 검찰청 앞에 잠시 다녀오자고 하셨다. 의아한 표정으로 따라나선 그 곳에는 한창 벚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서초동에도 봄이 왔다.

/안수지 변호사

서울회·오세인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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