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피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도권 법원 판사 A)

“판사가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검사 편을 들고 있다고요.” (성범죄 사건 피고인 B)

지난해 성범죄로 1년 동안 재판을 받은 30대 남성 B씨는 변호인에게 줄곧 판사가 검사 편을 든다고 말했다.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판사가 유죄를 전제로 재판을 진행한다고 변호사에게 하소연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들이 반복해 불출석하자 기일은 수차례 연기하면서 나오도록 유도하고, 선고기일까지 연기했다. 결국 B씨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변호사에게 판사 교체를 요구하는 기피신청을 부탁했다.

‘사법농단’ 의혹 사태 이후 법원에 접수되는 기피 신청 건수가 늘고 있다. 2017년 사법농단 의혹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런 경향은 도드라졌다.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 항소심 재판장이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기피 신청을 하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일선에서 만난 변호사들은 기피 신청은 말 그대로 ‘기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년 기피신청 인용률이 1%도 안 될 뿐 아니라 되려 판사의 심기만 건드린다는 이유다.

실제 매년 피고인들이 신청한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1%도 안 됐다. 지난해 기피·회피 신청 인용률은 0.6%에 불과했다. 2013년 이후 인용률을 봐도 한번도 1%를 넘지 못했다. 2013·2015·2016년은 피고인들이 신청한 기피 신청이 모두 기각됐다. 왜 그럴까. 판사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신청 사유가 말이 안 된다”는 이유다.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자신들이 신청한 증인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피신청이 접수된다고 한다.

피고인 심정으로 돌아가 보자. 피고인 입장에서 재판이 갖는 무게는 상당하다. 실형이 선고되면 법정구속 되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혹은 갓 태어난 아들이 있다면 어떨까. 이들에게 징역 6개월은 어떤 형벌보다 큰 고통이다. 일당 3~4만원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에게 벌금 100만원은 큰 징벌이다.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 눈도 침침한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 법원 청사에 앉아 항소장 등을 꼼꼼히 작성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 재판이 갖는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법원 스스로 기피 신청 인용률을 높여야 한다. 피고인들이 재판 과정에 만족한다면 그 결과도 승복할 가능성이 크다. 재판 과정부터 불만에 가득 찼는데 결과를 따르라고 한다면 누가 승복할까. 결과마저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피고인들이 갖는 사법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이제 기피 신청 인용률을 높일 때다. 물론 지나치게 말이 안 되는 기피 사유라면 기각도 필요하다. 그런데 0.6%는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염유섭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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