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실무수습을 계기로 민사소액단독재판부에 들어갔다. 지도 변호사와 담당 사건 재판을 기다리며 다른 사건 재판을 방청했다.

“단체가 주요사항을 정한 정관 같은 것이 있고, 대표자가 있으며, 구성원 변경과 관계없이 단체 그 자체로 존속될 수 있다면 단체로서 실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고는 피고가 맞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판사가 말했다. 재판부 앞에 홀로 앉은 원고인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뒤 자신이 속한 친목회는 어떤 단체이며, 자신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에 판사는 원고의 말을 끊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원고에게 석명을 구합니다. 그게 단체로서의 실질을 가지고 있으면 단체를 피고로 하셔야 된다고요.” 그리고는 또 한번 민법 교과서에 나오는 판례를 말했다.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판사님, 그럼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 정말 억울합니다”라고 하며 울먹이듯 말했다.

이에 판사는 “그건 원고가 알아서 하셔야죠”라고 하며 아주머니의 시선을 외면하고 다음 기일을 잡았다. 원고인 아주머니는 야단맞은 학생마냥 주눅이 들어 재판정을 나갔다. 아무래도 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법지식이 있는 사람이 봤을 때는 피고정정신청서만 내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만일 내가 그 아주머니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봤다. 법전원에서 미약하게나마 교육 받은 나는 재판장이 판례 내용을 말하는 것과 석명권을 행사하는 것 등을 듣고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법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법정에 나와 판사에게 동일한 내용을 들었다면 난해한 말로 인해 의미인식이 안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에게 내용전달이 안 되니 재판부와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의사소통이 안 되니 판사는 짜증이 나고 당사자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률상 조력을 하는 변호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나홀로 소송이 전체 소송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양식과 정보를 취득할 수 있고, 전자소송이 도입되면서 나홀로 소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서도 친절한 법원을 모티브로 석명을 활성화하고 법률상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이는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니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위 사례처럼 간단한 법률상 조력을 받지 못해 각하 당하는 등, 소송당사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좀 더 폭넓게 변호사조력에 대한 안내가 이뤄졌으면 한다. 일각의 변호사들이 말하는 전자소송 금지와 판사의 석명권 축소를 주장하지 않고서 말이다.

 

 

/배지성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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