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클럽을 둘러싼 마약 투약 및 유통 의혹은 시작에 불과했다. 버닝썬을 운영한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방은 정준영씨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 및 유포 범죄도 드러냈다. 이 사건은 마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재조사가 한창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범죄 의혹, 장자연 성상납 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연쇄 작용을 일으켰다.

세 사건은 모두 여성을 대상화한 성착취 사건이란 점 외에도 사건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작동 방식이 유사하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권력층을 비호하고 범죄 진실을 덮었다는 점 말이다. 버닝썬 클럽과 총경의 유착 의혹, 김학의 전 차관과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서 나타난 검경의 부실 수사 정황은 대중에게 공권력을 향한 실망을 넘어 절망감을 안겼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세 사건의 진실규명을 지시한 뒤 중도층 지지율이 반등하는 특수를 누렸을까.

기자들이 세 사건과 관련한 취재를 계속하는 동안 무대 뒤편으로 물러난 또 다른 사건이 내 눈에 밟혔다. 지난해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 검사 성폭행 사건을 은폐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 6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임 검사는 지난 2월 언론 지면을 빌려 사건 당시 검찰 간부들을 ‘대국민 고발’ 했다. 그 대상에는 사건을 덮은 검사들을 징계하지 않은 문무일 현 검찰총장도 포함됐다.

임 부장검사 사건과 관련해 지난 달 서울중앙지검에 관련 수사 상황을 물었더니 “조사하고 있다”는 짧은 답변만 얻었다. 그러나 과연 김 전 총장 등을 소환 조사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사건을 들고만 있다가 2020년 공소시효 완료 직전에 ‘혐의없음’ 처리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 내에서는 의도적으로 사건을 뭉개는 관행을 ‘정치적 미제’라고 하는데 이 사건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란 쓸쓸한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의 특별 진상규명 지시가 떨어지지 않았거나 언론의 끈질긴 보도, 여론의 관심이 없는 사건에서 검찰이 내부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치유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현재 검찰은 사법농단 수사를 마치자마자 대기업에 칼을 겨누며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검찰 개혁안을 추진할 동력은 힘이 빠지고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권 말기가 되어버린 역사의 굴레가 반복될 것만 같다. 낡은 것이 죽었는데 새 것이 오지 않는 상황.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위기라고 불렀던 바로 그 상황이 지금일까. 조금 늦더라도 새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윤지원 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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