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정국이 집권 2년을 채우고 3년차까지 이어질 기세다. 적폐로 지목돼 청산당하는 쪽이나, 적폐로 몰아붙여 청산하는 쪽이나, “적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물론, 인터넷 법령정보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적폐라는 단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범죄 구성요건으로 규정된 바 없고, 행정규제 근거로 인정된 바 없으며, 손해배상 청구의 사유조차 될 수 없음에도, 너도나도(법조인까지 포함하여) 적폐청산을 부르짖는다.

‘적폐’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서진(西晉) 시대 육기(陸機)의 ‘오등제후론(五等諸侯論)’이다. 주(周)의 봉건제와 진(秦)의 군현제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미약함이 이어지고 피폐함이 쌓여, 급기야 왕실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及承微積弊, 王室遂卑)”라고 봉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를 이어갈수록 유력한 제후에게 천자의 권력이 누수 되어 왕실은 유명무실화 하고 말았다는 것이니, 어쩌면 작금의 우리 대통령제가 처한 상황과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에서는 그 아들에게,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서는 그 형에게,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는 그 측근에게 대통령 권력이 누수 되지 않았던가.

봉건왕조에서 대를 이어 쌓이는 폐단이라기보다 민선정치에서 5년 단위로 되풀이되는 폐단이니 ‘복폐(復弊)’라고 불러야 맞을까.

삼국을 통일한 사마씨의 진(晉)은 제왕분봉(諸王分封)의 봉건제를 취했는데, 육기가 지적한 바 그 피폐함이 쌓일 겨를조차 없이, ‘팔왕의 난’이라는 중국사 최악의 막장정국으로 치닫는다. ‘오등제후론’의 저자 육기는 삼국시대 유일의 무패 지휘관 육손의 손자요, 오(吳)의 군권을 오로지한 대사마 육항의 아들이다. 그러나 서진 제일의 문장이라는 그 화려한 변려문에 비교하여 군사적인 능력은 보잘 것 없어서, 20만 병력을 이끌고도 참혹한 패배를 거듭했다고 한다.

지난 정권을 잡아 족친다고 지금 정권의 성과가 나올 리 없고 국민의 지지가 오를 리도 없건만, 정권교체를 거듭할수록 강도와 폭을 더하며 사생결단의 제로섬게임을 반복하는 행태야 말로 진정한 적폐라 할 것이다.

교묘한 논리로 법의 그물에 엮어본들 교체된 다음 정권에서 도리어 새로운 적폐로 지목될 뿐일 테니, 삼류정치에 조종되어 법을 난도질하는 삼류법치 행태의 악순환은 이쯤에서 그 고리를 끊는 것이 어떨까. ‘팔왕’ 각축의 난세에 육기는 낭야왕 사마륜을 섬겼으나, 성도왕 사마영이 사마륜을 축출하자 다시 사마영을 섬기다가 반란을 꾀했다는 모함을 받아 삼족을 멸하는 처분을 받고 만다. ‘적폐론’ 창시자의 비참한 최후를 글의 말미에 굳이 적어두는 속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신우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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