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법(家族法)은 1990년을 기점으로 급진적인 변경과정을 거쳐왔다. 민법 제 773조 내지 제774조가 삭제됨으로써 계모자(繼母子)관계나 적모서자(嫡母庶子)관계는 법정모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됐다.

새 엄마는 전처 소생의 자녀에게 있어서는, 단지 직계혈족인 아버지의 아내인 것으로서 인척관계로 변경됐고, 다만 새 엄마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만 가족의 범위에 들어간다. 물론 종래 계모자·적모자 관계는 가부장제도에 터잡아서 생성된 제도이다보니,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있고, 새 엄마(물론 팥쥐 엄마를 상정한 것이지만)에 의해서 그 자가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더욱이 계부자 관계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모자 관계만 인정하는 것은, 양성평등에도 어긋나는 불평등한 제도임이 틀림이 없었다.

이렇게 변경된 가족제도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나는 즈음에 제도를 보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최근에 심심찮게 제기되는 사건들을 보면, 전처 소생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자녀조차 출생하지 않고 살아온 부부가 혼인관계를 해소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안은 이랬다. 젖먹이에서 초등학생까지 5남매를 혼자서 키우던 남자와 측은지심에 혼인을 한 여성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남편의 전처 소생의 자식들과 새 엄마 사이에서 법률이 계모자관계를 인정해 주었기에, 그들 사이에 전혀 부모자식 관계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남편이 이제 90살이 다 됐고 치매까지 걸려서 돌아가실 날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은 새 엄마에게 돌아갈 상속재산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지 새 엄마 몰래 아버지를 설득해서 재산을 전부 증여받았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새 엄마가 5남매를 키우면서 평생 살아오던 집마저 손주에게 증여하게 하고는, 아들과 딸들은 새 엄마에게 도둑질을 했느니,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병들게 했느니, 바람이 나서 나갔느니 하는 갖은 구실로 구박하다 보니, 새 엄마가 더 이상 그 집에서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오게 됐다.

새 엄마는 더 이상 혼인생활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모든 재산들이 전처 소생의 자녀들에게 넘어간 것을 알게 됐다. 새 엄마는 남편을 상대로 한 이혼소송에 덧붙여서 아이들을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했다. 아이들은 새 엄마가 아빠와 갈등이 있어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재산을 아이들에게 증여한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이혼을 주장한 것이라면서 ‘아버지가 재산을 자식에게 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면서 오히려 새 엄마에게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기막힌 주장을 한다. 더욱이 새 엄마는 현재 집을 나가서 한 집에서 살지 않으니 부양의무도 없다고 한다. 이것이 가당한 주장일까. 이혼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재혼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번쯤 재혼 가족간 부양관계에 대해서 되짚어 보고, 필요하다면 제도를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안귀옥 변호사·인천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