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들어왔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저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뒷산에서 먹이를 찾아 내려온 늑대인지 구분이 어려운 저녁 어스름을 가리켜 오래 전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던 말이다. 3개월 전부터 출입하게 된 검찰의 영역이 이 어스름을 꼭 닮았다. 실루엣만 드러난 범죄, 무엇이 사실로 인정되고 어디까지 죄가 되는지 법원으로 가야만 알 수 있는 검찰의 시간. 그렇다면 확정되지 않은 범죄에 관하여 국민의 알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받아야 하는걸까. 보도의 ‘선(線)’은 어디까지인걸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 시작됐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기자들이 압수수색 영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요 인물들이 소환됐을 때 조사실이 있는 층 화장실에 숨어드는 기자가 발견되는 것도 예사였다고 한다. 이제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는 공소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체 어떤 논리로 가능했을까 싶다. 기자들에게 오픈돼 있던 검찰 영역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다.

최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수사과정에서 원칙에 위배되는 피의사실 유출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피의사실 공표, 심야 수사, 포토라인(공개 소환)을 없애라고 했던 지시의 연장이다. 법무부 훈령에는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전까지 혐의내용이나 조사일정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수사에 지장을 주거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국민이 즉시 알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수사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피의자 명예훼손이나 피의사실을 담은 언론보도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법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는 BBC의 사생활 침해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내 이겼다.

리처드가 15세 소년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의 자택 압수수색 일정을 BBC에 귀띔해줬고 BBC는 헬기까지 띄워 수사상황을 생중계했다. 그러나 리처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런던고등법원은 BBC가 리처드의 권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21만 파운드(한화 약 3억 1000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검찰 출입 기자에게는 가혹한 방향일지 모른다. 수사 일정과 내용을 하나라도 더 알아내야 하루가 마감된다. 이에 오늘도 검찰에묻고 또 묻는다. 지금의 취재방식도 언젠가 그랬다더라, 라고 얘기될지라도 말이다.

 

 

/박나영 아시아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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