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피의자 방어권 행사와 비밀유지의무 보장 위한 도입 필요성 피력해
“기업 법무팀 압수수색도 문제 … 변호사에 대한 신뢰 붕괴 가능성 높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던 대형로펌 압수수색이 또 다시 일어났다. 2016년,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다.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달 19일 A 대형로펌을 압수수색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로펌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 압수수색을 받았다. 지난번에는 ‘사법농단’ 사건, 이번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증거를 수집한다는 명목이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 필요성을 또 한번 피력했다. 로펌이 압수수색 대상이 되면,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 방어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변호사법 제26조에 따른 비밀유지의무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높다.

현행법상 변호사는 비밀유지 ‘의무’는 있지만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비밀유지의무는 변호사법 제26조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또 형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등에는 증언거부권과 압수거부권, 문서제출거부권 등이 명시돼 있다.

최승재 변협 법제연구원 원장은 “로펌 압수수색은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위험이 있다”면서 “로펌 압수수색은 엄정한 공익성에 대한 비교형량을 전제로 하여 엄격하게 심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장 청구 및 발부에 고도의 심사(strict security)가 필요하다”면서 “이 문제는 입법적으로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도입해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은 비밀유지권을 인정해 검찰 등 수사기관이 로펌 압수수색을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헌법이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를 다른 기본권 보장 수단으로 인정한다면, 실질적으로 작동이 가능한 정도를 유지하는 입법적 장치를 마땅히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국은 변호사에게 비밀유지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서다. 미국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직무에 대한 모범직무윤리규정에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명시하고 있다. 또 유럽은 변호사 행위규범에, 영국은 보통법에 소송 관련 여부와 관계 없는 법률조언을 보호하는 변호사특권(Legal professional privilege)을 명문화했다.

미국 미네소타 법원은 오코노 대 존슨 사건에서 “영장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더라도 영장이 집행되는 한 당초 의도한 증거 외에 법적으로 압수수색 대상이 아닌 정보도 있을 수 있다”면서 “경찰이 일단 정보를 알게 되면 지워질 수 없으므로, 변호사 비밀유지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기업 법무팀 압수수색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기업 법무팀은 압수수색뿐 아니라 수색영장 없는 자료 임의제출 요구도 꾸준히 받아왔다. 팀 내에 사내변호사가 있어도 비밀유지의무를 내세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소속 기관이 압수수색을 당한 경험이 있는 한 사내변호사는 “수사 공문이 와서 자료를 임의제출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이를 거부하고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면서 “많은 기업이 언론에 압수수색 사실이 보도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어 “변호사와 의뢰인 간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소송 자료를 빼앗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로펌이나 기업 법무팀 자료가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로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변협은 비밀유지권 입법화를 위해 계속 분투해왔다. 토론회 개최, 변호사법 개정안 마련, 성명서 발표 등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도입한 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나경원 의원이 2017년, 유기준 의원이 2018년 대표발의한 변호사법 개정안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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