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가 변호사로서 발걸음을 뗐을 때만 해도, 변호사로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항상 마음 한 켠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학교 방송국 활동, 전국토론대회, 국회인턴 등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다녔던 학부시절을 떠올리며, 차라리 그 때 법대 수업을 조금 더 들을 걸 했다. 법학 이외의 공부나 활동들이 전부 부질 없고 작게만 느껴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다 보니, 의외로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고 있는 의뢰인이 있었다. 현안으로 인해 기사를 내리거나 수정하는 작업이 시급하게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송의 형태가 아닌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중재나 조정 형태의 구제가 필요했다. 사건이 배당되는 중재부는 총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5인 중 2인은 현직 법관 및 변호사로 구성되나, 3인은 학계,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다. 즉, 법조인이 아닌 3인과 언론사인 상대방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사건이 종결된다는 의미다. 나는 의뢰인의 법리적 주장과 함께, 피해상황, 더불어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언론사 측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의뢰인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었고, 원활한 의사소통은 열 건이 훌쩍 넘는 언론사건을 모두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학교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프리미어를 이용한 영상 편집을 배운 적도 있었는데,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이런 경험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형사사건을 진행하며 제출된 수십 시간짜리 증거영상 파일들을 하나하나 뜯어 필요한 부분만을 편집했고, 공판단계에서 10여분 길이의 영상으로 만들어 변론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살면서 배워 온 것들이 언젠가는 쓰임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은퇴하는 그 날까지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으리라 오늘도 다짐해본다.

 

/안수지 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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