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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독도 단상(斷想)
노동영 변호사  |  noic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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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호] 승인 2019.02.18  09: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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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2일은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서 매년 독도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시마네현은 1905년 2월 22일 내부 회람용이란 도장을 찍어 관보에 게시된 바 없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고시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시마(隱岐島)에서 서북으로 85해리 거리에 있는 섬을 다케시마(竹島)라고 칭하고 지금 이후부터는 본현(本縣) 소속의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 -명치 38년 2월 22일. 시마네현 지사 마츠나가 다케요시(松永武吉)-”라고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3년 한 시민단체가 시마네현청을 방문해 위 고시의 원본 열람을 요구했다가 직원으로부터 1945년 8월 24일 청사 화재로 그 원본이 함께 소실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위 고시가 지방행정문서에 불과함에도 위 고시에 의한 독도 편입이 근대 국가의 국가행위였다는 일본의 주장에 고시 원본문서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은 결정적인 흠이 될 것이고, 일본은 이와 관련해 정황 수준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고종 37년인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鬱陵島)를 울도로 개칭해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며,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한다”는 취지의 칙령 제41호를 반포했다. 독도의 날이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국가기념일로 아직 지정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는 울릉군과 경상북도에서 또 사회관행상 매년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법을 공부했고 국제법을 연구하고 있음에도, 독도문제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던 터에, 마침 작년 7월 10일부터 13일까지 외교부와 대한국제법학회의 후원을 받아 독도를 탐방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목적으로 독도 관련 현안문제에 대한 인식과 국제법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고자 정부가 후원한 것이었다. 신청대상이 한정적이라고는 하지만 독도 탐방프로그램의 신청기한을 수차례 연장할 정도로 관심이 적었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는데, 2016년 여름에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재한 평화궁(Peace Palace)에서 국제법 아카데미 연수를 받을 당시, 200명의 연수생 중 중국인 연수생이 30명, 일본인 연수생이 10명, 한국인 연수생이 본인을 포함 단 2명이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1907년 두 달에 걸쳐 이역만리의 헤이그 땅을 밟고도 제2차 세계평화회의에 참가하지 못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지 못한 회한에 숨을 거두신 이준 열사께 면목이 없었던 것과 비슷한 심정이랄까. 국제법은 각 주권국가의 국익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의 조화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의 중시는 강하고 행복한 나라의 지표가 될 것이다. 충북변호사회보에 쓴 것을 각색해 독도 탐방의 소회를 통해 이 글로 감사 인사를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나, 울릉도 저동항으로 향한 첫날에 숙소가 있던 사동항은 기존의 도동항과 저동항을 대신해 울릉공항과 해군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 개발되는 곳이다. 때마침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국무총리 직속 자문위원회인 독도지속가능이용위원회가 개최돼 2018년 883억원의 집행계획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시에 선학과 학문후속세대 간의 포럼이 개최돼 두 분의 국제법 교수께서 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위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독도에 관해 발표해주셨는데, 두 교수님의 공통된 의견은 동 조약 제2조 1항의 ‘일본은 Korea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하는 Korea에 대해 모든 권리·권원·청구권을 포기한다’는 규정이 한국과 일본에 의해 동시에 독도문제의 법적 근거로 쓰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동 조약이 독도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고, 독도문제를 위해 우리의 법적 근거로 원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둘,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과 독도에 닿는 것은 3대가 복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처음 방문한 독도에 바로 발을 디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행운이 아닌가 싶었다. 육경 독도경비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뭉클하고 벅찬 마음에 동도와 서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에 실컷 담았다. 600리의 휴전선에서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독도를 향한 일본의 영토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무겁다. 선학들의 성취를 이어받아 한국 문제(Korean Question)로 대표되는 한반도 현안의 법적인 해결방안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또 ‘UN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에 따라 독도는 섬으로서 영해(12해리 1해리 = 1.852㎞)를 갖지만, 섬이라도 인간이 거주할 수 있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야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갖게 되는데, 과연 독도가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까.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실상 해양영토의 문제이다. 어려운 문제다.

셋, 육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눈으로 볼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독도를 삼봉도(三峰島) 또는 가지도(可支島)로 불렀던 기록이 있음-는 설렘에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독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부산 태종대에서 대마도를 본 것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독도를 탐방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했던 여정에서 이것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섬에 대한 영유권에 있어 그 국가의 실효적 지배가 필수적이다. 역사적 권원이나 내륙으로부터의 지리적 근접성은 실효적 지배를 위한 절대적인 요건은 아니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청명한 날이면 두 섬이 멀지 않아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독도에 대한 역사적 권원이나 지리적 근접성을 가진 우리가 독도에 대해 필요충분하게 실효적 지배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직접 울릉도와 독도에서 발을 딛고 확인했으니, 울릉도에서 독도를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장차 한반도를 둘러싼 많은 거시적인 문제들이 닥칠 것이다. 예측 가능해 준비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을 것이다. 법률가들의 역량을 통해 기여돼야 할 것들이 많다.

/노동영 변호사(충북회·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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