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작년 연말을 목포에서 보냈습니다. 일종의 가족 해넘이 여행을 목포에서 한 셈이죠. 사정상 처와 첫째는 빠지고, 저와 둘째, 막내 3명뿐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가족 여행이라 할 수는 없겠네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뜬금없이 막내가 휴일 아침에 기차를 태워 달라 졸랐습니다. 갑자기 무슨 기차냐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방바닥을 뒹굴며 보내는 휴일보다 복되겠다 싶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바람이나 쐬다가 저녁에 돌아올 요량으로, 백팩에 물병, 과일, 애들 바람막이 몇 가지만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점심식사는 역 근처 1913송정역시장에서 해결했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처럼 쇠락해가는 골목 상권에 젊은 청년들이 맛집을 창업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재래시장입니다. 저는 멸치국수를, 둘째는 곱창을, 막내는 상추튀김을 선택해서 나눠 먹었습니다. 돌이켜보니 15~16년 광주에 살면서 저도 광주발 목포행 기차를 탄 기억이 없습니다. 광주송정역에서 불과 37분 만에 목포역까지 도착한다니 놀랍습니다. 눈이 쌓인 목포역 플랫폼에 내려 녀석들은 눈싸움에 즐겁습니다. 어차피 특별한 목적지도 없어서 내버려 두었더니 대합실까지 빠져나가는데 1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사실 저는 초중고교를 목포에서 다녀서 목포가 고향과 같습니다. 목포역 광장은 제가 19살 서울로 떠날 때와 거의 변한 게 없습니다. 녀석들은 기차여행 그 자체가 좋은지, 아니면 피아노, 로봇 학원을 땡땡이쳐서인지, 날씨가 제법 춥고 거리가 꽤 멀었지만 오거리를 지나 근대역사관 거리를 거쳐, 목포항까지 걷는데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저는 녀석들에게 근대역사관 근처 이훈동 정원, 조선내화 공장터를 보여주면서, 생전에 조선내화에 재직했던 할아버지 얘기, 조선내화 공장에 놀러 다녔던 제 얘기도 해 주었습니다. 원래는 저녁에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녀석들이 1박을 하자면서 저더러 소주라도 한잔 하라고 꼬드겼습니다. 저는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급히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후, 잘 먹고 마시고 재미있게 놀다가 다음날 기차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목포가 1월 중순부터 연일 시끄럽습니다. 손모 의원의 근대역사관 인근 부동산 매입을 놓고 벌인 투기 논란입니다. 문광위 간사인 손모 의원이 근대역사관 거리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직무상 정보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하였거나, 미리 후보 부동산을 매입해 두고 소관청 문화재 지정에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의혹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좋은 경관과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 사라지기 전에 이를 보존하고, 본인의 서울 나전칠기 박물관을 이전할 계획이었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손모 의원 탈당으로 정치권 및 여론은 지지론과 비판론(실망론)으로 갈려 있고, 건설회사 및 재개발조합 개입 음모론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지지론은 목포 시골 기껏 기천만원 부동산, 그것도 제약 많은 문화재 부지로 땅투기가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고, 비판론은 내부 정보 접근자인 국회의원이 친지, 백지신탁 법인을 통해 22건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이라면 투기적 성격을 부인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쌍방 직권남용 및 명예훼손 고소고발 사건은 검찰 수사로 각 주장의 진위가 가려질 것입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칼로 케이크를 자르듯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급 정보와 위법 정보의 구분도 희미하거나 불투명합니다. 저로서는 혜안의 투자 세계와 무모한 투기 영역을 구별할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손모 의원이 부동산 매입의 이유로 밝힌 도시재생을 통해 목포 바다 풍경에 일제와 근대의 히스토리를 입힌다면 산토리니보다 아름다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거시적 투자 비전만큼은 곧이곧대로 믿고 싶습니다. 어느 때쯤이면, 황금빛 저녁노을을 쐬기 위해 에게해까지 찾아 나설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유달산 어느 언덕 빛 잘 드는 카페에서 바다를 향해 반쯤 누워 바라보는 다도해 노을도 충분히 멋질 테니까요.

 

 

/김상훈 변호사(광주회·법무법인 빛고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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